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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수 목사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월현리 1387번지이다.
횡성의 태기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태화강이 우리 집 앞을 돌아 영월 수주면 운학리를 거쳐 동강으로 빠져나가는 곳, 그곳은 영월과 횡성의 경계였다.
그 땐 우리 동네뿐 아니라 영월 수주면에도 중학교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 집으로부터 30여리 떨어진 강림에 중학교가 신설되자 나와 운학리의 용수며 그 친구들이 강림의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나보다 더 먼 거리에 살았으므로 학교 근방에서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토요일이 되면 그들은 걸어서 50여리나 되는 영월군 운학리 집으로 돌아가 한 밤을 자곤 다시 걸어 자취집으로 오곤 했었는데, 그러려면 꼭 우리 동네를 거쳐가야 했다.
용수 말고도 여러 명의 남녀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그런데도 또렷하게 ‘용수’라는 이름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토요일이 되면 운학리 집으로 가는 용수를 월현리 고개에서 괴롭혔던 이유일 것이다.
왜 그랬는지, 뭘로 까탈을 삼아 용수를 울렸는지, 심지어 귀싸대기를 때리기도 하고, 언젠가는 용수가 여러 날 학교에 나오지 않아 잠깐 걱정이 생겼지만, 다시 학교에 돌아온 용수를 난 가만두지 않고 괴롭혔다.
그 용수가 중학교를 다 다녔는지, 고등학교를 진학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원주에서 택시 운전기사를 하는 그를 수십 년이 지난 어느 해 만나서 미안하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그 때 멋쩍게 웃으며 “네 덕분에 같은 동네 현숙이랑 결혼도 했잖아”라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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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는 건지 아니면 야속하다는 건지 모르는 표정으로 말이다.
다우어 드라이마스라는 네덜란드 심리학자는 ‘기억을 통해 시간을 인지하기 때문’에 과거는 길고 현재는 빨리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용수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나이’와 ‘세월’ 때문이 아니다. 괴롭힘을 당하다가 목숨을 끊었다는 어린 학생들, 중학교 아이들의 사건 때문이다.
물론, 가정의 해체가 일어나서 요즘 아이들이 옛날과 비교하여 사회적 근력이 모자란다고는 하지만, 그때 용수에게 가했던 나의 행동들은 요즘의 그 ‘가해 학생’들의 행동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니 현기증이 일어난다.
참으로 못되고 나쁜, 미안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오늘이라도 용수의 전화번호를 알아서 통화라도 해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아직 원주에 살고 있으면 달려가 그의 아내가 된 중학교 동창인 현숙이와 용수를 만나보고 싶다.
옛 일이지만 중학교 때 ‘괴롭히던’ 그 일들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 다음에 강림 장날 우리가 감동하며 먹었던 자장면이라도 같이 먹고 싶다.
아울러,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목숨을 끊은 어린 친구들에게, 옛날 강림중학교를 다니며 용수를 괴롭혔던 ‘공범’의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고 애도를 표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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