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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죽으면 화장이 대세라고 한다. 


당해보지 않아서 모르긴 해도 난 화장이 싫다. 


성경은 인생을 두고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선언하셨는데 흙으로 복귀할 생각은 안하고 왜 불속에 뛰어들어야 하는가? 


땅에 묻혀야 마땅하다.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죽으면 땅에 묻으라고 주문할 참이다.


종교개혁 발상지 유럽 여행단을 이끌고 유럽에 갈 때마다 난 런던 웨슬리 채플 정원에 있는 웨슬리의 무덤을 찾는다. 


웨스트민스터 애비에 누워있는 사치스러운 무덤에 비하면 서민적이고 평범한 무덤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시민공원에 감추일 듯 묻혀있는 칼빈의 무덤 묘비에는 그냥 JC란 글자만 새겨져 있다. 


존 칼빈의 이니셜이다. 


아무도 자신의 무덤인줄 알아 채리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나중에 추종자 한 사람이 이니셜만라도 새겨서 작은 묘비를 세웠다고 한다.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당 내부에 있는 루터의 무덤도 작은 동판무덤에 불과하다. 

이들은 모두 땅에 묻혔다.


위대한 개혁자들도 그렇게 매장되었는데 내가 무슨 통뼈라고 화장은 무슨?


그런데 매장은 고사하고 통째로 무덤이 없는 경우도 있다. 


모세다.


지난달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이스라엘 민족가운데 가장 ‘큰 자’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모세와 다윗이 결승에서 맞서지 않았을까? 


나는 다윗보다는 그래도 모세가 좀 더 위대했다고 생각한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통일왕국을 이루어 가장 넓게 영토를 확장했던 위대한 통치자였다. 


그래도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 영웅적인 탈출에 성공하고 고생고생하면서 남자만 200만 명 이상, 아이들과 여자들을 합쳐 적어도 300만 명 이상을 광야로 끌고 다니며 40여년을 먹이고 재우고 돌봐준 모세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과연 가나안 땅에 진입할 수 있었을까?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면서도 육체의 기름기가 번들번들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가나안땅에 풀어놨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다는 위기감 때문에 출애굽 1세대가 사라질 때까지 광야에서 뺑뺑이를 돌리신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하는데 굳이 사이즈로 따진다면 그들은 작은 도시국가에 해당되는 인구였다. 


그러니까 사막국가였다. 


그 사막국가의 대통령은? 


당연히 모세였을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엔 여호수아?


그때의 모세 리더십을 상상해 보면 만약 모세가 흑심을 품고 야훼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후 “내가 재림주”라고 헛소리를 일삼는 오늘날의 이단교주와 같이 “내가 하나님”이라고 외쳤더라면 백성들은 아마도 “모세 하나님, 모세 하나님”을 외치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런 상상의 나래도 가능하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 가나안으로 향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방향을 반대방향으로 틀어 동쪽으로 전진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되었을까?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둥지를 틀고 물처럼 솟아나는 석유를 팔아 세상을 호령하는 ‘석유모세왕국’을 건설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AD 70년 로마의 타이터스 황제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전 세계를 처량하게 떠도는 유랑민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오늘날의 장사속 개념으로 따져볼 경우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에 대한 특허권(?)과 모세오경의 저작권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모세를 상상해가며 나는 느보산에 올랐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마침내 도달했던 지금의 요르단 모압평야 서쪽 그 느보산! 


멀리 서쪽으로 여리고성이 건너다보이고 남쪽으로는 사해, 북쪽으로 이어지는 요단강을 건너면 약속의 땅에 진입할 순간인데 별안간 하나님은 “너는 여기까지. . ”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장해제를 명받은 모세는 그 느보산에서 120년 생애를 조용히 마감했다. 


나일강에 버려진 후 공주에게 발견되어 이집트 왕궁에서 시작된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막을 내린 곳, 느보산.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무덤은 지금 유대인들의 거룩한 순례코스가 되었다. 


그 무덤 앞에 작은 채플을 만들어 놓고 유대교 랍비들이 지금도 모세 오경을 외우고 공부하면서 얼굴을 앞으로 뒤로 흔들면서 정신없이 몰입모드에 빠져있는 곳이다. 


다윗의 무덤은 그렇게 유대인들의 성소가 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무덤조차 없다.


나는 성지순례를 끝내고 집에 와서 다시 모세의 마지막을 서술하고 있는 신명기 34장을 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그 수많은 선지자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과 대면하여 아는 사이였다고 하니 하나님과 대면하여 그는 왜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을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왜 여기서 멈춰야 하냐고? 


모세가 죽은 후 모압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30일을 애곡했다는 대목에서 난 알 것 만 같았다. 


혹시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에 모세는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무덤조차 남길 수 없었다는 사실.


지금도 가끔씩 모세의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설 같은 ‘해외토픽’이 등장하곤 하지만 느보산 주변 어느 골짜기에 묻혀있을 그를 상상해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매장은 무슨 매장? 


모세처럼 무덤도 없이 묘비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닐까?”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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