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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워싱턴DC지역 한인교역자회가 목사증을 발급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목사증이 왜 필요할까 의문이 생기지만 사실 필요한 때가 있기는 하다.


우선 대부분의 병원 파킹랏에 들어서면 목사님 전용 주차공간이 있다. 


환자를 심방하러 오신 목회자에 대한 특별한 예우차원일 것이다. 또 병원에서 숨이 넘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그의 임종예배를 위해 부리나케 달려가는 목회자의 급한 사정을 감안하여 아주 편리한 공간에 주차할 수 있도록 마련해 둔 Pastors Only 주차공간은 얼마나 고맙고 자상한 배려인가?


그런데 파킹관리인이 접근해서 “당신 목사 맞아?” 그렇게 시비를 걸어 올 때는 무엇으로 증명을 해야 하는가? 


그때 급한대로 명함을 꺼내 보일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못 믿겠다고 나오는 자가 있으면 그 다음 대처 방법은? 


가슴에 품고 온 성경을 들어 보이며 하소연을 해야 할까? 


그럴 때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행된 목사증을 내보일 경우 대체로 “당신 목사 맞아?”라고 덤비는 사태는 대부분 수습되기 마련이다.


이런 수모(?)를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병원에 갈 때는 클러지 칼라를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로만 칼라, 목회자 칼라라고 부르는 흰 목 띠 형태로 깃이 없는 셔츠에 부착하는 개신교회 성직자 복장을 클러지 칼라라고 한다. 


평소엔 착용하지 않다가도 장례식 때나 특별한 예식을 거행할 때 개신교 목사들도 자주 착용하는 게 클러지 칼라다. 


그런데 한국 감리교회에서 감독으로 뽑힌 목사님들은 죽으나 사나 보라색 셔츠에 이 클러지 칼라를 하고 다니는 걸 보았다.


그럼 교통위반 티켓을 받고 판사 앞에 갈 때 이 클러지 칼라를 하고 가면 죄를 감해 줄까? 


아무리 법을 다루는 판사라 할지라도 목사란 신분을 미리 복장으로 암시해 주면 좀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여 법원에 갈 때 클러지 칼라를 하고 가면 판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목사가 교통 위반도 미안한 일인데 뭐가 자랑이라고 클러지 칼라까지 하고 옵니까?” 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목회가 너무 바쁘다보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목사님도 교통법규를 어겼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동정 점수를 줄까?


또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실기시험을 보러 DMV로 갈 때를 가정해 보자. 


그때 클러지 칼라를 하고 가면 감독관이 “목사님이니까 좀 서툴러도 그냥 합격도장 찍어 드릴께요!” 그렇게 나오는 감독관이 혹시 있기나 할까? 아마도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녹녹치가 않다.그러니 클러지 칼라가 통하는 곳은 겨우 병원 파킹랏 정도가 아닐까? 


그런 때를 제외하고 구지 목사증을 보여줘야 할 곳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기사를 읽다보니 “목사에게 돈 빌려주지 말라”는 말을 듣고 놀라서 이 목사증 발급을 생각해 냈다는 대목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면서 “목사증 발급으로 자칭 목사들이 재정과 인간관계에 피해를 입히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교역자회가 그 발급 동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하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교회가 동네북이 되어 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그래도 목사라면 돈도 꿔주고, 목사라면 우선 한 자락 믿고 들어가는 현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효용가치’가 있다고 믿고 그 가짜 목사신분을 이용하여 불이익을 추구하거나 사기를 치고 있는 사람도 있다면 자꾸 주저앉는 교회이미지에 불결한 물질로 개칠하는 꼴이 아닌가?


목사가 목사증으로 신분을 드러내고 살아야 한다면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긴 하다. 


목사는 목사증이 없어도 살아가는 행동을 통해서 목사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스님은 우선 머리를 삭발한 채 승복을 입고 밖에 나가니 승려증이 없어도 스님으로 눈치 챈다.


목사는? 목사증을 가지고 신분을 밝혀야 하고, 클러지 칼라를 통해 간접암시를 해야 신분이 드러나는 경우라면 신행일치를 추구해야 할 성직자의 엇박자 신앙인 셈이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일화가 기억난다. 그가 수도원에서 나가 마을로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면 수도사들은 의례히 개신교 용어로 ‘설교’하고 돌아오는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마을을 삥 둘러보고 돌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한 수도사가 “선생님, 한 말씀도 안하시고 그냥 마을을 다녀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면 “글쎄, 내가 몸으로 보여주는 것 말고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어른의 말씀은 성직자란 말로 하는 게 아니고 말로 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란 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목사증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 가짜 목사가 많아서 그렇다면 걱정 되는 면도 있지만 그나마 목사증이 통하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란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증”이 없어도 증을 초월하는 삶을 추구해야 사실은 진짜배기 목사가 아닐까?


LA에서도 한때 목사증이 발급된 때가 있었지만 크게 실효를 거뒀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우리교계가 가짜목사나 사기꾼 목사를 퇴치하는데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야 좌우지간 목사증이 나쁜 발상은 아닌 것 같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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