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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을 앞두고 은퇴한 선배 목사님 한분이 LA 한인타운에 갈 일이 있으니 만나서 점심이나 하자고 했다. 


내가 후배이니 점심은 내가 대접하겠다고 생각하고 약속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순대국을 좋아하는 분이라서 둘이 만난 식당은 순대국집이었다.


내가 돈을 내려고 식사 중에 카운터에 가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식사를 하다말고 달려 나온 선배는 내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지갑을 열어 계산을 마쳤다.


이민생활을 거의 같이 시작하여 4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미국오기 전에는 신학교 동문으로 만났으니 참으로 오랜 인연이다. 


자연히 오랜만에 만났으니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함께 되돌아보며 식사를 했다. 


특별히 같은 또래의 목회자들이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대한 추억으로 얘기꽃을 피웠다. 


너무 일찍 죽었다느니 . . . 작은 교회서 월급도 못받고 목회하다가 아마도 울화병에 걸려 ‘조기사망’했을 것이라느니. . . 사모님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어쩌면 자식들에게 얹혀살면서 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 대형교회 목사가 ‘갑’이라면 작은 교회 목사는 ‘을’이라며 교회사이즈에 따라 목회자 사회도 반드시 갑을관계가 존재한다느니 . . . 대개 그런 애기들이었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이어서 그랬는지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떠올리는 추모점심이 된 셈이었다. 


헤어지는 파킹랏에서 그 선배는 한국 배 한 상자를 꺼내어 내 차 트렁크에 넣어주었다. 


새해도 건강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늘 행복하게 일하라고. . . 그렇게 헤어지고 오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러지?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 마지막 작별인사도 아니었는데 웬 눈물? 


그저 연말에 흔히 찾아드는 상습 멜랑콜리려니 하고 넘어갔다.


점심에다 배 한 박스도 고맙지만 2시간 이상 고단하게 운전하고 찾아와서 따뜻한 격려의 말을 남겨 주고 간 그 선배가 고마워서 나는 고맙다는 답례 카톡을 띄웠다. 


그런데 카톡으로 날라 온 답신이 또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내가 은퇴하고 나이가 들다보니 돈보다 더 중한 것이 시간이란 걸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목사님은 돈보다도 더 중한 시간을 오늘 내게 주었습니다. 고마운 것은 목사님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시간 내주어서 옛날을 추억하는 아름다운 시간도 가졌으니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고마워요.”


나 같은 사람의 시간조차도 돈보다 중하다고 여겨주는 그 선배의 카톡에서 건진 무언의 가르침은 세월을 내 것인 양 착각하지 말라는 암시였다.


지금까지 “세월이 좀 먹냐”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우리 대부분은 공짜로 주어진 시간 앞에 너무 교만하게 살아온 게 사실이다. 


‘건강 100세 시대’니 어쩌고 하면서 100년 세월 정도는 보장받은 것처럼 시간 걱정은 까맣게 잊고 돈 걱정만 하고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돈보다 더 중한 것이 시간이란 걸 깨닫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당연한 듯 잊고 살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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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비로소 “세월을 아끼라”는 에베소서 저자의 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제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내가 누려야 할 정해진 시간에서 뺄셈 속도는 나이가 들수록 더 스피드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오늘 이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겨 곱빼기로 남은 인생을 살아내야 할 텐데... 


벤자민 플랭클린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시간은 인생을 구성하는 재료이니까. 똑같이 출발하였는데 세월이 지난 뒤에 보면 어떤 사람은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의 거리는 좀처럼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잘 이용 했는냐, 아니면 허송세월로 보냈느냐에 달려있다.”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돈보다 중한 것이 시간이란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365일을 하나님으로부터 공짜로 받아 살아왔으니 일년이란 세월의 사용내역을 되돌아봐야 할 결산의 때가 머지않았다. 


그 일년이란 돈보다 중한 시간들을 나는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사용했을까?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면서 그 다음 말은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악한 세상 중에 세월을 아껴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한해를 마감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송년사인 셈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 목사님이 깨우쳐준 돈보다 중한 시간. . . 


허무한 곳에 너무 많이 그걸 낭비한 것만 같아서 죄송한 마음으로 또 한해의 석양을 맞는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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