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개척교회 여는 김정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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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식 목사는 동안(童顔)에 동심(童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에 감동하다 보니 눈물을 참는게 일상이 됐다”는 고백이다.

 

12일 정오, 경기도 파주시 검산동 한무리교회(임봉혁 목사)엔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와 선교단체, 대안학교 관계자들이 모였다.
올 7월 한무리교회 바로 옆에 문을 여는 예온교회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예온교회는 장애인을 위한 교회로 ‘밥풀떼기’ 김정식(52) 목사가 담임을 맡는다.
김 목사는 내친김에 예온교회 건물의 일부를 발달장애아 대안학교인 참빛학교에 내줄 생각도 갖고 있다.
장애인 관련 부탁은 도저히 거절을 못하겠다는 게 이유다. 그에게 장애인은 곧 예수님이다.
김 목사가 장애인 사역을 한 것은 올해로 10년을 훌쩍 넘겼다.
2007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목사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해온 셈이다.
하지만 장애인 사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힘들게 사역을 이어갔지만 장애아들은 변화될 줄 몰랐다. 보람은커녕 상처만 깊었다.
그때 장애인 방송에 출연한 예빛선교단의 고지혜 자매를 만났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봤던 것.
자신의 신세타령이 너무나 부끄러워 펑펑 울었다.
가슴에 깊이 파였던 상처는 저절로 회복됐다.
고씨는 두 달 뒤 예온교회 전도사가 된다.
김 목사는 원래 교회를 다녔지만 이름뿐인 집사였다.
그러다가 1998년, 미국 유학 중에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기도 방법을 몰랐다. 그저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며 “하나님, 저 구름 예쁘죠?”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급박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란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당당하게 지내왔다고 자부했던 모든 삶이 죄스러웠다. 몸도 주체할 수 없었다.
남의 집 아파트 잔디밭을 자기 집 앞마당처럼 뒹굴었다. 1998년 10월, 회심의 순간이었다. 귀국 후엔 장애인 방송 프로그램을 맡는 등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가 깨달은 것이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것. 버스는 물론,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기도를 한다.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으면 2∼3시간만 자더라도 기도할 정도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몇 시간 동안 얘기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잖아요. 저에겐 기도가 재미있어요. 눈만 뜨면 기도하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눈물이 많아졌다고 했다. 물론 슬프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다. “저는 감동을 잘하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걸 들으면서 감동해서 울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또 감동해서 울고. 어쩌면 눈물을 참는 게 제 일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지난주 코미디계 선배인 한무씨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에 온 연예인들에게 비쳐진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버스를 타러가다 말고 신당동 골목을 찾았다.
가장 좋아한다는 2500원짜리 우동이 생각나서다.
그런데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그는 비참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동료 연예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요즘엔 아예 내 이름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과거처럼 화려한 세상의 조명은 없지만 묵묵히 장애인을 섬기는 그의 모습에서 스타가 아닌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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