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목회자사모회를 알리는 방법 중 광고도 있지만 글 연재를 하는 방법도 있어 글을 쓰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목사 안수 받은 첫 목회지에서 27년 섬기다가 은퇴했다. 

한 교회밖에 안 있어본 우물안개구리라서 사실 교회가 어떤 곳인지, 사모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어릴적 다니던 교회의 사모님이 검정치마 흰저고리 입고 교인들이 거둬준 성미쌀 얻어먹고 사는 것 보고 나는 절대 사모는 안될거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모로 부르셨다. 

천방지축 갈팡질팡 열심히만 하다 보니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철 들만하니 은퇴를 하게됬다. 

선교에 마음 팔린 남편이 27년 몸담았던 교회를 무 자르듯 쿨~하게 은퇴한지도 벌써 15년이 되오는데 사모회와의 30년 인연은 아직도 끊지 못하고 회장까지 되어버렸다. 

은퇴 후 첫 5년은 목회중독?을 못 버리고 멀리 있는 미자립 교회를 섬겼다. 

그러나 그 후 선교지에서 늙고 싶다고 이불까지 싸들고가서 몇 년씩 코빼기도 안보이고 잘도 견디고 있는 남편에 비해 나는 꽃다운 33세부터 60세까지 불철주야 온 몸과 마음이 깃들어 있는 나의 분신, 나의 첫사랑 옛교회에서 내 혼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밤낮으로 눈에 아른거렸다. 

예배 드리는 엄마들의 귀에 아이 울음소리가 안 들리고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예배당과 아코디온칸막이 하나 사이에서 아기들을 업고 안고, 땀 안나는 베이지역에서 땀을 뻘뻘 흘렸며 애쓰던 그 시절도 그립고, 성도 한 사람 시험 들어 교회 안 나오면 자식 잃은 어미 마음처럼 뼛속까지 아프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밤새워 기도하던 그 시간들도 그리웠다. 

주일학교 두 번째 교실 카펫에 올이 풀렸던데..계속 풀리면 어쩌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떨쳐버리지 못했다. 

크소심한 나는 성도들의 희로애락이 나의 희로애락이 되어 30대부터 체스트페인을 달고 살았다. 

대통령 다음으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목사 사모라는데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여도 사모회에 나가면 사모의 마음을 알아주고 진심으로 기도해주고 토닥여주는 사모님들이 멀리 있는 친정보다 낫고 오랜 친구 같고 의지가 되어 사모회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수 있었다. 

한 번 정들면 끊지 못하는 못난 성격 때문에 요즘에야 은퇴의 자유를 누리고 오직 하나님과 나, 단 둘의 생활을 할 준비가 되니 사모회 회장이라는 또 하나의 사역이 주어졌다. 

이 나이에 뭘 하려고? 그런 생각도 들지만 85세에 헤브론 산지를 정복한 갈렙을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 

이제는 교회성도 대신 사모들이 나의 성도요 사랑하는 영적 가족이 되었으니 또 천방지축 열심히 뛰어야 할 것 같다. 

     <북가주목회자사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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