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고순희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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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떠나셨다. 장례식을 마친 뒤 유품을 정리하면서 열어 본 어머니의 옷장 안에는 옷이 몇 벌 없었다.
버스운전과 주방 일로 어려운 살림을 꾸리면서도 교회와 이웃을 섬겼던 어머니.
56년 평생 자신을 위해서는 옷 한 벌도 쉽게 사지 못했지만 이웃을 위해서는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국제구호기구 기아대책과 전주 홍산교회에 각 1000만원씩 기탁한 고 고순희 권사의 2남1녀가 떠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기아대책 관계자는 5일 “어떤 것보다도 귀한 후원이 들어왔다”면서 “그 숭고한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했다.
기아대책은 고 권사가 기부한 1000만원을 10월16일 ‘세계식량의날’ 행사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식량기금에 보태기로 했다.
고씨의 형편은 늘 넉넉지 못했다. 12세 어린 나이로 아버지를 여의고 5남매를 돌보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잔심부름부터 주방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최근 20여년 동안은 버스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온종일 학교와 학원의 셔틀버스를 운전하고, 틈틈이 식당에서 일하며 한푼 두푼 모았다.
고씨는 지난해 10월 난소에서 암이 발견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 온몸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다.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지난 달 15일 숨진 그가 선뜻 내 놓은 2000만원은 그렇게 쌓인 돈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따뜻했다.
딸을 먼저 보내야 하는 망연함에 절망하는 77세 노모를 “어머니, 감사했어요. 저는 믿음이 있으니 담대해요”라고 위로했다.
신앙은 고단한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줬다.
가족들 모두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기탁, 가족들에게는 아무 것도 남겨줄 수 없었지만 문제될 것 없었다.
익명을 원한 고 권사의 딸(30)은 “우리에게 어머니가 남겨주신 것은 신앙 하나로 충분하다”며 “얼마 전 꿈에서 어머니가 나타나 ‘좋은 데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한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고씨의 믿음은 가족들을 구원으로 이끌었다.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둘씩 신앙을 갖게 됐다.
숨지기 전 날도 고씨는 비신자인 시부모에게 “어머님, 아버님 부디 예수 믿어서 우리 함께 천국에서 만나길 바란다”고 간절히 말했다.
결국 시부모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남동생과 여동생은 고 권사의 신앙을 본받아 각각 장로와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기아대책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씨의 막내 동생 후남(47·여)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밥 잘 먹고 다녀라’고 말씀하며 챙겨주시더니 가신 뒤에도 굶주린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셔서 자랑스럽다”며 “언니는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가르침을 주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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