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섭 장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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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기섭 장로


심기섭(64) 장로로부터 연락이 왔다. 13년여 만에 노량진수산시장의 한 횟집에서 만났다.
심 장로가 오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을 때 처음 그를 만났다.
그는 워싱턴의 성공한 한인이었다. 심 장로의 집은 정권 탄압을 피해 온 한국 민주화 인사들의 사랑방이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심 장로의 도움을 받았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면서 그는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멀리서 민주화운동을 도왔던 보답도 받았다.
한국냉장 사장, 노량진수산시장 사장 등을 역임했다. 나는 그가 ‘잘 나가던 시절’에 만났다.
그는 겸손했고 장로다웠다. 언제나 웃는 모습이었으며 유쾌한 농담도 잘했다.
몇 차례 만난 이후 나는 유학을 위해 잠시 미국에 건너갔고 내내 그를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심 장로의 소식을 들었다.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소식이었다. 이후 그는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심 장로로부터 메일이 왔다. 짧았지만 마음에 남는 깊은 내용이었다. 몇 차례 메일을 교환한 끝에 만났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노화의 모습은 있었지만 유쾌한 농담은 여전했다. 나와 만나지 않았던 시간동안 그는 산꼭대기에서 계곡으로 추락한 경험을 했다.
수년 동안 고통과 깨어진 아픔, 두려움, 혼돈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분노가 그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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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시기에 그에게 다가왔던 사람들은 계곡으로 떨어진 그를 외면했다.
전화벨이 두 번도 울리기 전에 그의 전화를 받으며 반색했던 사람들이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멀어져갔다.
‘너희들이 그럴 수 있어!’ 분노는 쌓여갔다.
깊은 나락 속에서 몸과 마음이 피폐되어 갔다. 자신의 푸른 시절은 지나갔다는 상념이 몹시도 괴롭혔다. 두문불출했다. 우울해져갔다. 생을 포기한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그때 책 한권이 보였다. 헨리 나우웬의 ‘긍휼’. 그 책이 심 장로를 살렸다. 깨어진 아픔과 고통, 두려움의 현장 속에 하나님이 계셨다. ‘스플랑크나’. 헬라어로 내장이란 뜻. ‘라카밈’. 히브리어로 자궁이란 의미.
나우웬은 예수님이 긍휼을 이야기 하실 때 스플랑크나와 라카밈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 예수님이 ‘심기섭’을 바라보시며 울고 계셨다.
“그 책 한권을 읽자 신기하게 입맛이 돌았습니다. 살맛이 생겼습니다. 책에는 치유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 책이 저를 살렸지요.”
이후 그는 3,4년 동안 집안에 박혀서 성경과 기독교 관련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말씀은 달았다.
책은 깨달음을 줬다. “고난이 축복이란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진리도 모른 채 한 생을 끝낼 뻔 했거든요. 행복합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까요.”
함께 9호선 전철을 탔다. 전철 속 그가 씩씩해 보였다. 생각했다.
‘심 장로의 시절은 지금부터’라고. 뉴스를 통해 심 장로를 서운하게 했음직한 정치권 인사들이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들 또한 계곡에서 깨달으리라. 예수님의 긍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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