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소천한 강영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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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 박사가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말, 익명의 한 분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왔다.
“저, 강 박사님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아니, 왜 그러시죠?” “강 박사님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부족하지만 강 박사님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요.” “어떤 방법이지요? 임상경험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 한번도 써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차피 시한부라면 이 방법이라도 해 보면 좋을 듯 해서요….”
그 분에게 연락처를 알려 주지 않았다. 아무리 강 박사가 힘겨운 상태지만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방법을 시도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났다. 지난 23일 그 분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자신이 교장이라고 밝히면서
강 박사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청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음날 연락드리겠다고 약속했다. 24일 오전, 강 박사 소천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 나왔다.
나는 강 박사가 췌장암 진단 받기 한 달여 전 그와 부인 석은옥 여사를 서울 모 호텔에서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나로서는 강 박사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였다. 강 박사는 키는 작았지만 맑고 깨끗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병색은 하나도 없었다. 속으로 ‘어떻게 하면 저렇게 곱게 늙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강 박사의 췌장암 발병과 연이은 소천 소식은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유고집을 준비 중인 두란노 관계자에 따르면 강 박사 발병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강 박사를 살리기 위해서 여러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 박사는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집에서 마지막 인생 마무리를 했다. 강 박사는 절대 긍정의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도 긍정으로 만든 긍정의 연금술사 였다. 그는 내게 말했다. “실패의 순간이 인생 최대 행운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저는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장미꽃 이었습니다. 기적이지요. 인생에는 분명 무수한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 긍정의 사람, 강 박사가 어찌 췌장암의 공격은 그대로 순응하면서 받았을까? 그것이 나로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았다.
불사조처럼 일어나서 다시 “우리에게 분명 기적이 있습니다. 저를 보세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강 박사의 지난 인생과 걸맞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내 강 박사가 저항하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가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을 충만하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 안에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기에 췌장암이 다가 왔을 때, “그래, 여기 까지”라면서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죽음 너머의 더 좋은 일’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삶의 태도리라.
그와 만났을 때,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끝을 맺었다.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와 은혜의 사람 강영우 박사.
68년, 잠시 살았던 이 땅의 옷을 벗고 지금 주님과 함께 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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