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는 혼자가 아이다’ 펴낸 재미교포 전문의 심재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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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훈 박사가 지난 14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자전적 소설을 펴낸 계기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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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뉴저지주에서 내과 의사로 진료를 시작하며 이국에서 고생하는 재미교포들에겐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2000년대 미국 올랜도 연방교도소 의무과장직을 조기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2003년부터 12년간 1년에 3개월씩 서울 영등포구 요셉의원을 찾아 고국의 노숙인과 행려병자 등을 진료했다. 

중남미 의료선교 땐 환자들에게 비싼 약을 나눠주는 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다시 한의대에 입학, 72세에 한의사 자격증을 딴다. 

이젠 침술과 약으로 양방·한방 의료봉사를 병행한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잊지 않은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거주 내과 전문의 심재훈(88) 박사의 경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나만 잘 묵고 잘 살라고 내 같은 놈을 의사로 만든 것 같지 않습니다. 젊었을 땐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진료비를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연방 공무원 은퇴를 앞당겨 의료봉사를 할 마음을 먹었고, 이왕 의료봉사를 할 꺼면 미국에서 멀어도 고국이니까 한국에서 하는 게 안 낫나 생각으로 영등포 쪽방촌 요셉의원을 찾았습니다. 의료 시설이 없는 카리브해 연안 국가에선 약 대신 침술이 낫겠다고 떠올라 양의 임에도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해 선교에 나섰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심 박사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미수(米壽)인 나이가 무색할 만큼 기억이 또렷했다. 

설탕과 소다는 물론 햄 베이컨 같은 가공육을 피하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걷기 운동과 더불어 역시 의사인 막내딸의 클리닉에서 월·수·금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지금은 팜비치 헤브론장로교회(김종은 목사)에 출석하지만, 과거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와 함께 해외 의료선교를 다닌 일을 회고했다. 

심 박사는 “초등학교도 4년 밖에 못 다닌 내가 의사가 될 조건이 하나도 없었는데, 하나님이 이같이 만드신 것은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심 박사는 자신의 출생과 방황을 다룬 자전적 소설 ‘니는 혼자가 아이다’(가디언)를 최근 출간했다. 

그의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작가 김미조씨가 글을 다듬어 소설로 펴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경험한 부모의 이혼으로 그는 경북 봉화, 대구, 경기도 수원, 일제 강점기의 경성, 부산, 경남 함안, 의령, 마산, 양산 등 각지의 연고처를 떠돌며 외톨이 생활을 한다.

심 박사는 할머니를 따라 일본 교토에서 살다가 식민지 조선으로 가출을 하기도 하고, 광복 후 다니던 중학교에선 일본 체류 경험으로 ‘쪽발이’라고 놀림 받자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또다시 가출해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일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 고교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대에 입학하기까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인생의 전반기를 보냈다. 

소설은 이 전반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의대 시절 심 박사는 대구중앙교회에 출석하며 세례를 받는다. 

기독교 의료기관인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수련했고 도미한 이후엔 아동문학가 최효섭 목사가 함께한 남부뉴저지교회 등지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간다. 

심 박사는 요셉의원 등지의 의료봉사 경험에 대해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 속내를 알아요. 내가 그렇게 살았거든요”라며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어려울 것도 없는 거죠”라고 밝혔다. 

지금도 환자를 만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심 박사는 여전히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한국인 환자들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고 진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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