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자녀들, 소망중에 즐거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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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명 목사 (크로스 교회)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새찬송가 161장).  예수께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예수 믿는 우리들도 장차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부활의 자녀들입니다.  


이 부활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부활을 믿는 자들은 죽음이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임을 믿습니다.  

불신자들은 살기가 정말 어려울 때 그 고통을 끝내려고 자살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자살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 엄연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하기 위하여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진 생각을 초월하여 하늘의 생각에 이르게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편안하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믿고, 성도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오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지금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영육 간에 죽음으로 덥혀있는 이 세상에서 출세하면 인생을 성공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 부활의 세계에서는 실패자가 됩니다.  


진정한 성공은 부활 세계에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과 상급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땅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취하며 이 세상 즐거움에 푹 빠져 있습니다.  


하늘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얼마나 즐거울까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사고  방식은 돈이 최고입니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황금만능 사상에 젖어 있습니다.  


부활의 사람들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것이 없기에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물질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자녀들은 인정에 깊이 매여 있습니다. 

 

죽음이 가족 간의 관계를 끊어 놓을 때 절망적으로 슬퍼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들은 불신자들이 가지는 절망적인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합니다.  찬송을 부르며 앞선 성도를 보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부활의 세계를 진정으로 믿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세상에 현혹됩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세상의 풍습대로 살려고 합니다.  


부활의 자녀들로서 참된 성도들은 불신자들과는 다른 관점과 다른 태도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십자가 아래서 만나는 부활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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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일 목사 (주님의 한빛 교회)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서 부활의 영광이 더욱 밝게 빛나는 부활의 아침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 주님을 따르는 백성들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곁에서 십자가를 지고 함께 죽어가던 강도 한 사람 만이 주님의 백성으로 동행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흩어져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곳이 갈보리 십자가 아래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곳은 빈 무덤이 아니라, 십자가 아래입니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삶에 새로운 모양이 만들어 지고, 이전까지 살아온 우리들의 삶이 새로운 특색있는 삶으로 전환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라는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내 환경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곳임을 이해하게 되고, 이곳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는 출발점인 예루살렘인 것을 알게 됩니다.  


부활의 기쁨은 오직 십자가 아래에서 만나는 주님을 통해서만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됩니다.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 여전히 핏자국이 선명한 갈보리 십자가 아래에서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영광이 이 지역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 위에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나의 삶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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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목사 (가주 빛과소금교회 )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그리고 사복음서 모두 이 사건을 조금씩은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 분의 제자들을 세우셨고, 그 분의 고난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친히 보이셨다는 사실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삶을 제자들에게 보이기를 원하셨다. 


제자들이 그 분의 삶에 관심을 갖고 다가오기를 원하셨다. (일례로, 요한복음 21장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 분을 향해 3차레나 사랑 고백을 하게 하시고, 베드로의 마음을 확인 받으신다.)


그런데, 마태복음 28:5-7, 마가복음 16:5-7에서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로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 갈릴리로 먼저 가서 기다리시겠으니 그리로 오라는 메시지만 전달하셨다. 

(물론 그 사이에 일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지만, 갈릴리로 부르시는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하셨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주요 사역지였던, 갈리리 지역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처음 부르심과 은혜의 경험들을 상기시키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리고 그 갈릴리 땅, 산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28:18-20의 “지상 대위임령,” 또는 “대사명”을 주셨다.


그 메시지는 땅 끝까지 이르러,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라는 사명이었다. 


그리고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비결도 함께 말씀하셨다. 바로 제자들이 사명을 완수하는 그 날까지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메시지를 갈릴리 땅에서 주심으로, 그 분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부활의 예수님까지 모두 기억하며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자이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는 참된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서 살아서 동행하시는 것이다. 


그 분의 삶이 나의 삶이 되는 것이다. 


나의 옛사람을 죽이고, 예수님께서 사신대로 사는 것이다. (로마서 6:11, 갈라디아서 2:20) 

세상 끝날까지 이 진리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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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진 목사 (콩코드 침례교회)

제가 선교지에 있을 때, 무슬림을 대상으로 전도사역을 하는 분들과 훈련을 하면서 전도의 feedback 통계를 내보며 한가지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무슬림들에게는 100%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 입니다. 
그들은 구원은 알라의 뜻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루 다섯번 기도 하는것, 선행을 하는것, 라마단 금식을 지키며 자선을 베푸는 것, 무슬림의 성지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 것 모두 구원을 받아 보려고 하는 무슬림들의 구원을 향한 노력의 모습들 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는 극단적인 무슬림들은 즉각적인 구원을 위해 자폭을 선택 하기도합니다.  

그들은 신을위해 싸운다고 하며 성전 (聖戰, Jihad) 을 이야기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자신의 구원을 위한 행위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성전 (聖戰, Jihad)에 참여하다 죽은 자들은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원을 향한 무슬림들의 내면에는 구원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코란이 말하고 있는 목록들을 실천하며 사는 무슬림들의 삶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지켜가며 사는 기독교인들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 다른점을 구분지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부활 (復活) 입니다. 

불안감은 빼앗길까봐 먼저 달려들게 하지만,  확신은 넉넉하게 나누어 주게 합니다. 
불안감은 없기에 붙잡고 매달리게 하지만, 확신은 가졌기에 마음놓고 바라보게 합니다.

올해도 부활절을 다시 맞으며, 이세상을 살면서 불안한 가운데 달려들고 매달리며 살지 않고, 확신가운데 나누고 바라보며 살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그분을 믿고 바라보며, 나의 부활에 대한 변치않는 확신과 소망을 다시한번 가져 봅니다. 

더욱 콸콸 흐르는 생명의 근원을 마음껏 맛보고 나누는 축복된 부활절을 다시한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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