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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 깊은 밤중에 별빛은 희미하여라 주 예수 고민하시며 외로이 기도하시네

주 홀로 깊은 밤중에 고민에 싸여 계시나 그 사랑 받던 제자도 스승의 괴롬 모르네한밤중 피땀 흘리며 인간의 죄를 지신 주 무릎을 꿇고 애쓸 때 천사가 도와 주도다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셔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주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은 사방이 공동묘지로 둘러싸여 있다. 

내일이면 이제 그 공동묘지에 예수님도 묻히시게 될 것이다. 


그런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가?

겟세마네 동산에 가면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다. 교회 안에 들어가면 매우 어둡다. 컴컴하다. 


교회 분위기가 무겁다.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올 봄 성지 순례를 갔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 밤늦은 시간에 들렸다. 


낮에만 해도 더워서 반팔을 입어도 되었는데, 밤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밤바람이 싸늘해서 몸이 움추려 들었다. 


바로 이런 쌀쌀한 날씨에 예수님은 겉옷 하나 걸치시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낮에는 순례자들로 북적대던 곳이었지만, 밤에는 인기척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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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구름 속에 가렸다 나왔다 했다. 


주변이 어슴푸레 보였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그렇게 깜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그곳이 감람나무로 둘러쌓여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겨우 사람을 알아볼 정도였을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는 여기 저기 바위가 많이 있다. 이곳에 있는 기념 교회당 안에는 예수님이 기도하셨다고 하는 큰 바위가 있다. 


예수님은 바위에 기대어 땀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를 하셨다. 


나도 땅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데 어디선가 까마귀들이 날아와 까악 까악 하며 울어댔다. 

나는 성지에 갈 때마다 밤중에 그곳에 가서 기도를 하곤 한다. 


다른 기도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는 기도만 한다.


예수님은 적어도 1시간 이상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하셨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에 예수님의 몸은 땀으로 적셔졌으며, 옷은 밤이슬로 흠뻑 젖었을 것이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님이 재판 받으신 곳에서 시작해서 시작해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길을 말한다. 


순례자들을 위해서 14지점을 마련해놓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도록 해놓았다. 

우리도 이 길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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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지점 ◈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시다


이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있는 예수님을 가룟 유다가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찾아와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준다.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시고 날이 밝자 빌라도의 뜰에서 최종 재판을 받으시게 된다. 이른 아침인데도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여러 가지로 심문했으나, 아무런 죄도 발견하지 못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자기 입으로 나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요구에 따라 십자가에 내어준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처럼, “그가 죽음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다.” 우리의 죄를 아무 죄도 없으신 그분이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것은 가룟 유다도 아니었고 대제사장도 아니었고 본디오 빌라도도 아니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 두 번째 지점 ◈

십자가를 지시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로마 군병들은 그에게 홍포를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운다. 

그리고 그 앞에 가서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조롱한다. 


예수님에게 침을 뱉기도 하고,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채찍을 내리칠 때마다 살쩜이 떨어져 나왔다. 예수님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으며, 연실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 고꾸라지고 저리 고꾸라지고 하셨다. 

예수님은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곳을 기념하는 곳에는 “유죄 판결 예배당”과 “채찍질 예배당”이 있다. 



◈ 세 번째 지점 ◈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첫 번째 넘어지시다


십자가는 죄수가 짊어지고 형장까지 직접 가게 되어 있었다. 십자가는 보통 50 kg정도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이미 탈진해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50 kg정도의 십자가의 무게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 가지 못해서 넘어지시고 만다. 

예수님은 단순히 나무를 둘러메고 가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가시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죄의 짐을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십자가를 어떻게 나무의 무게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넘어지셨습니다. 하물며 저희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 네 번째 지점 ◈

슬퍼하는 어머니를 만나시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자 제자들은 다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그러나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몇몇 여인들만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고 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을 지켜보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장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잘 돌보아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어머니를 죽음의 자리에서도 잊지 않고 기억했던 것이다.

 


◈ 다섯 번째 지점 ◈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다


원래 십자가는 죄수가 사형장까지 직접 지고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혼자서 십자가를 감당할 힘이 없었다. 

그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얼굴이 파리해졌다. 


숨소리가 예사스럽지 않다. 

이대로라면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했다. 

그건 예수님을 불쌍히 여겨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도중에 죽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예수가 반드시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다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뒤에서 따라가고 시몬이 혼자서 십자가를 지고 간 것은 아니다. 시몬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걸 도와준 것이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두 사람이 같이 지고 간 것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구레네 시몬의 모습이 기독교인의 실존이다. 

시몬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 여섯 번째 지점 ◈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리다


예수님이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면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고 있다. 

이제 저 만큼에 골고다 언덕에 세워놓은 사형틀이 눈에 들어온다. 

로마 군병이 앞서가면서 예수님에게 채찍을 가하고 있다.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 뒤따라오고 있다.

이 때 한 여인이 군중 속에서 뛰쳐나와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다. 

그 수건에는 땀과 핏자국이 흥건히 배여 있었다. 


그 많은 군중들 가운데 예수님의 땀이라도 닦아드려야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베로니카라고 불리는 그 여인뿐이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뭔가를 해준 사람은 바로 이 여인이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만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



◈ 일곱 번째 지점 ◈

두 번째 쓰러지시다.


처형 장소가 눈앞에 보인다. 

언덕은 더욱 가파르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정신이 더욱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한번 쓰러지신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이 함께 거들어주었는데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신 것이다.


세상 죄를 다 두 어깨에 짋어지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육중한 십자가가 땅에 쓰러진 예수님의 몸에 덮치는 순간을 그려보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예수님은 꼼짝도 하지 않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계신다. 


그러면서 아마 예수님은 잠시 쉬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마 군병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와서 욕설을 퍼부으며 군화발로 찬다.

 그래도 꼼짝하지 않자, 우악스럽게 두 손으로 예수님을 잡아 일으킨다.



◈ 여덟 번째 지점 ◈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시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어머니, 그리고 다른 마리아가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그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가던 길을 멈추시고 돌아보신다. 

예수님은 그들의 울음소리를 알아보신 것이다.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 자기를 위하여 울어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 여인들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신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


고난 주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며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아픔의 눈물, 회개의 눈물, 죄송한 눈물, 감사의 눈물,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늘 울어도 그 눈물로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위해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생각하신 것이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흘리는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라,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아홉 번째 지점 ◈

세 번째로 쓰러지시다


예수님은 형장에서 50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세 번째로 쓰러지셨다. 


 예수님도 자신을 못 박을 사형틀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발걸음을 옮겨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쓰러지셨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쓰러져 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는 두 사람의 비명 소리가 비수처럼 예수님의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누운채 죽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셔야만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일어서신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형장을 향하여 걸음을 옮겨놓으신다.

그때 누군가가 옆에서 예수님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더라면 얼마나 예수님에게 큰 힘이 되었겠는가? 


지금도 그분은 우리에게 간절히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시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체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지 않는가?



◈ 열 번째 지점 ◈

옷을 벗기시다.


마침내 골고다에 도착하신다. 

주변에 있는 군인들은 예수님을 못박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난폭하게 벗긴다.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래야만 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하나 몸에 걸친 실오라기마저도 빼앗기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 다 내어주신 것이다.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자 채찍에 맞은 자국이 예수님의 등과 손, 발에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핏자국이 여기 저기 남아 있다.


누군가가 우리의 옷을 강제적으로 벗긴다면, 말할 수 없는 모욕과 수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옷을 벗기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모욕이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서 있다. 


발가벗긴 예수님은 다시 한번 모욕과 수치를 느끼셔야만 했다.

인간이 가장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되는 때는 옷을 벗겼을 때라고 한다. 

기독교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달려있지 않다. 


십자가만 있다. 


그러나 카톨릭의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달려 계신다. 


십자가에서 고난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달린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이 옷을 벗겨진채로 달려있다. 

그러나 더 자세하게 보면 예수님이 발가벗긴 모습은 아니다. 

예수님의 가장 부끄러운 곳을 살짝 가려놓았다. 


그러나 사실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았다. 로마 병정들은 부끄러운 곳을 가려주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발가벗긴 채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본다면 충격을 받을 것이다. 

얼굴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진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분이 우리 때문에 발가벗기는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다.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도 다 짓밟혀버리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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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이진희 목사 (웨슬리 교회)



 ◈ 열한 번째 지점 ◈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눕히고 못을 박기 시작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목과 발목에 못을 박는다. 


보통 손바닥에 박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손바닥에 박게 되면 체중을 견디지 못해 찢어지고 만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을 박은 것이 아니라 손목에 박았던 것이다.



◈ 열두 번째 지점 ◈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다


예수님의 몸무게가 팔목에 박힌 녹슨 못에 의해 지탱되었을 때의 그 고통,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손과 발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너무 고통스러워 몸을 제치면 제칠 수록 더욱 더 고통스러우셨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은 더해가기만 한다. 

신경이 점점 마비되어 가고,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간다. 

정신은 더욱 더 혼미스러워 갔다. 


이산화탄소가 폐를 통하여 온 혈관에 점점 더 많이 전달된다. 

그러면서 숨은 점점 가빠져가기만 한다. 


큰 숨을 한번 몰아 내쉬시고는 이렇게 기도하신다.


“하나님,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오른 쪽을 바라보시면서, 거기 같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는 말씀을 하신다.

“요한아, 보아라. 네 어머니이시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몸을 뒤척이면서 괴로워하시면서 참다못해 이렇게 외치신다.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얼마나 처절한 부르짖음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원망하실 정도로 하실 정도로 그렇게 고통스러우셨던 것이다.


그러시더니 “목마르다”고 신음하신다.


몸 안에 있던 수분의 양이 위험 수위에까지 이른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이 다 다가온 줄 아시고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후 깊은숨을 한번 내시면서 마지막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시고는 고개를 떨구신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로마 병정이 예수에게 와서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다. 거기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온다.



◈ 열세 번째 지점 ◈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다.


보통 십자가 형을 받게 되면, 죄수가 죽은 다음에도 십자가에서 내리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러면 새들이 와서 시신을 쪼아 먹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호의를 베풀어서 그날로 십자가에서 내리게 하여 공동묘지에 묻히게 하였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로부터 예수의 시신을 가져가도 좋다고 하는 허락을 받는다. 

로마 군인들은 창으로 예수님을 찔러서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리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형장을 떠나고 마리아와 몇몇 여인만이 남아 있다. 마리아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고 통곡을 한다.



◈ 열네 번째 지점 ◈

예수님을 장사지내다.

 

예수는 아리마대 요셉이 가족묘로 준비해놓은 무덤에 묻히신다. 

이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이었다(누가 23:53). 


33년 전 하늘 영광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셔서 마굿간에 누우셨던 예수님은 이제 오늘 무덤에 누우시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돌무덤에 묻히셨다. 


그래서 예수 탄생 기념 교회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보려면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동굴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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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에 가면 마리아의 집터 위에 수태 고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 마리아의 집도 암반을 파서 만든 동굴이다. 


나사렛 사람들도 대부분 암반을 파서 만든 동굴에 살았다. 

예수님도 이런 동굴에서 사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에서 태어나시고, 동굴에서 사시다가, 동굴(돌무덤)에 묻히셨다. 그리고 동굴에서 다시 살아 나오셨다.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님이 묻히셨던 돌무덤에서 끝난다. 

15번째 지점이다. 


이 15번째 지점은 14번째 지점과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15번째 지점으로 가보자.




◈ 열다섯 번째 지점 ◈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이 성묘 교회이다. 

그곳에 가면 예수님이 묻히셨던 곳이라고 하는 장소가 있다. 

지난 3월에 몇 백 년 만에 30억 이상을 들여 막 보수를 끝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 무덤 안에 들어가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그곳이 진짜 무덤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른다.


성지 순례를 가면 반드시 이 성묘 교회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신 예수님을 묵상한다. 십자가 찬송을 부른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 놀라운 은혜에 감격한다.


예루살렘에 가면 성묘 교회와 승천 교회가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부활 교회에 갔다왔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부활 교회만 없다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부활 교회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있기는 있다. 


성묘 교회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부활 교회이다. 


성묘 교회에 들어가면 백합처럼 생긴 거대한 천정 지붕을 볼 수 있다. 

그곳으로 환한 빛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부활하셨는가? 


묻히셨던 바로 그곳에서 다시 부활하지 않으셨는가? 


그러니까 부활 교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성묘 교회가 바로 부활 교회인 것이다. 

그러나 성묘 교회를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곳에 가서 예수님의 죽음만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예수님의 부활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성 금요일 예배만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갈 때마다 부활절 예배를 드린다. 

부활 찬송을 부른다. 


죽음을 죽이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찬양한다. 

부활절 예배를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드리는 것이다. 


그게 맞는 것 아닌가? 


예수 부활했으니 우리 부활 하겠네!!!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우리의 무덤도 비게 될 것을 확인하는 감격을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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