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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밥 나시고랭, 복음국수 미고랭, 꼬치 사떼, 고깃국 소또........

인도네시아 음식은 맛있었다.

매콤한 소스 삼발과 함꼐 먹으면 더 입맛을 돋웠다.

망고와 파파야도 먹어보며 인도네시아에서의 처음 몇 주를 여행객의 마음으로 보냈다.

시간이 지나가며 파송식의 감격도 잡은 손의 온기도 캠프파이어의 불씨처럼 사그라들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말이 통하는 건 달랑 우리 세 식구.

여행객과 같은 흥분도 가라앉고,  이국적인 음식도 슬슬 표정 없는 얼굴로 대할 때 몸살감기를 앓으며 피곤함이 몰려왔다.

열대기후와 새로운 환경에 몸이 적응하는 거라 여기며 지나가겠거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뜬금없이 사람들이 둘재 임신을 축하한다는 것이었다.

난 속으로 ‘지금 임신하는게 과연 축하받을 일이야?’하며 의아해하다 잠이 깼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챙겨온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선명한 두 줄이 보였다.

바로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

두리안 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시장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오는 날이 반복되었다.

배를 손으로 꼭 감싸 안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학교에 가서 인도네시아어 공부도 하였다.

입덧은 눈치 없이 계속되었고 모든 음식이 말할 수 없이 느끼하였다.

느글거리는 속을 한 번에 잡아줄 김치 생각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김치동에서 막 꺼낸 시원하고 아삭한 김치를 쭈욱 찢어서 입에 가져가는 상상이 되풀이되었다.

빨간 고춧가루를 묻혀도 상관없다.

매콤 새콤한 깍두기를 아작아작 씹어먹는 상상도 더불어 등장하였다.

똑같은 상상은 늘 가득 고인 침을 꼴깍 삼키며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는 듯한 아쉬움을 남겼다.

김치만 먹으면 해결될 것 같은 열망이 생기자 김치 못 먹는 한이 맺힐 지경이었다.

현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인들은 마치 UFO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봤다고 하였다.

선교사들의 기도는 영혼 구원이나 영적 전쟁같이 차원 높은 기도라 여겼는데, 김치를 위해 기도할 줄이야.

그날은 작정하고 아침부터무릎 꿇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요. 제발 김치 좀 주세요.”

난 결영ㄴ한 표정으로 한껏 진심을 담아 아버지께 고했다.

그날 처음으로 가게에서 우연히 한국인을 만났다.

너무나 반가워 김치, 임신 등등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분은 급한 일이 있다며, 전화번호만 받아 황급히 떠나셨다.

매우 아쉬웠다.

같은 날 저녁, 집 전화가 울렸다.

낮에 가게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다.

“기도하고 자려는데, 자꾸 하나님께서 김치 좀 가져다주라는 것 같아서요. 아까 그 가게로 나오시면 드리고 편하게 잘게요.”

나는 너누 놀라고 감사해서 급히 그 가게로 뛰어갔다.

붉게 물든 노을이 김칫국물 색깔 같았다.

아름다웠다.

그분이 양손에 김치통을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엔 배추김치, 다른 한 손엔 깍두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김치 좀 달라는 딸의 기도에 해가 저물기 전에 응답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김치는 말 그대로 인생 김치였다.

하나님은 김치를 하늘에서 떨어뜨릴 수도 있으셨겠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주시기를 즐겨하셨다.

처음 만난 살마에게 후하게 김치를 주신 그분의 순종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나도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 삶에는 비밀스러운 기쁨이 있었다.

나누고도 채워지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쁨이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역사가 되었다.

오늘도 김치는 무척 맛이 있고 소박한 밥상도 만족하게 만든다.

늘 새롭고 충분한 주님의 은혜와 닮아있다.

섬세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익어 있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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