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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목사

(아틀란타 한인교회)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전도사 한 친구가 밑도 끝도 없이 “목사님은 일생 가운데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이지만 답이 너무도 뻔했습니다.

“우리 집사람하고 연예할 때, 그리고 첫 아이 낳았을 때, 그리고 아이들 어려서 자랄 때…”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목회는 재미없으셨어요?”라고 다시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썰렁한 질문인데도 이상하게 대답이 금방 나왔습니다.

“지난 30년 목회 행복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어려운 때가 없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행복을 위한 어려움이었던 같아.”라고 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행복’이란 의미가 세상에서 말하는 그것이 아닌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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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뜬금없는 질문에 답을 한 이후, 내 입에서 나온 그말들을 생각하며 며칠간 가슴이 뿌듯한 감사로 살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내년 1월이면 꼭 30년입니다.

목회도 내년이면 꼬박 만 30년인데 동서남북을 구별도 못하면서 설교를 했던 그 시절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우습고 아찔하고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은혜가 크기만 합니다.

신학교 갓 졸업하고 보스톤에서 부목으로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성경공부를 하면서“사실 마태복음 마태가 쓴것 아니고 누가복음 누가가 쓴 것 아니고….”학교에서 배운 대로 강의를 했더니 연세 많으신 권사님 한 분이 손을 드시더니“목사님, 나는 평생 마태를 마태가 쓰고 누가를 누가가 썼다고 믿었는데 아무 문제없었습니다.”하시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대구제일교회 출신으로 철저한 보수신앙을 가지시고 기도도 많이 하시고 존경받는 어른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권사님이 그러시다면 그것이 맞을 것 같네요.”라고 답을 했더니, 그런 바보같은 내 모습에 앞에 계시던 젊은 장로님들이 깔깔 웃으며 뒤집어지시듯 재미있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권사님 성함은 김남수 권사님이신데, 그 분의 외손자가 보스톤한인교회 한승희 장로님이시고 시카고 기독교문화센타를 하시는 김왕기 장로님과‘Ministry Direct’라는 목회센타를 운영하는 김진기 목사님도 그 권사님의 손자들이십니다.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님 앞에서면 두려워서 다리가 떨리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담임목사님 나이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20대 초반 내가 모셨던 스승들의 연세가 모두 40대 초반이었는데, 왜 그때는 그분들이 모두 엄청‘절대적’인 존재들로 느껴졌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감리교목사인데 내 스승들은 모두 한신대를 졸업하신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이미 하나님 부름 받으신 한신대 총장을 지내신 고재식 박사이십니다.

안식년 맞아 해방신학자 보니노와 함께 연구를 하시러 가는 길에 시카고 들리셔서“야 이놈아! 공부해라. 너 공부 기회 놓치면 후회한다. 이번에 나와 함께 같이 안갈래?”하시며 내가 공부하기를 바라셨던 어른이십니다.

첫 담임목사님은 홍근수 목사님이신데 목회가 무엇인지 바닥에서부터 가르치셨습니다. 매 월요일이면 자기 설교를 평가하라고 하시면서 내가 주저주저하면“감리교 목사들 수준은 그것밖에 안되나? 그래가지고 감리교 되겠어?”하시며 호통을 치시고는 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너는 배운 것은 적은데 왜 그리 많이 가르치려 하느냐?”고, 목사가 되려면 가르치기를 즐겨하지 말고 배우기를 즐겨하라고 하셨고 배우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나를“다음 주부터는 오지 않아도 된다.”하시며 하산명령을 하신 스승은 곽노순 목사님이 십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잊혀져 가는 세월의 어른들이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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