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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교회 손경일 담임목사

 

저는 운동을 참 좋아합니다.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거의 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배구를 참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탁구를 치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이 운동은 공격과 수비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이 공격을 하면 다른 사람은 수비를 하고, 그 사람은 다시 수비를 뚫기 위해 더 큰 공격을 시도합니다. 

예전에 저는 공격형 탁구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공격이 멋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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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는 공격을 잘 하지 못합니다. 

언제부턴가 왼쪽 무릎에 문제가 생겨 왼쪽 다리에 힘을 주기가 어려워져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격보다 수비 위주의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것도 왼쪽 무릎에 로보캅처럼 두꺼운 보호대를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수비 위주의 경기를 하다보니 수비도 꽤  재미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힘차게 때려도 그것을 잘 막다 보면 공격 선수는 힘에 부쳐 실수를 할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최선을 다해 공격을 했는데 그것을 잘 막는 그 기분은 참 괜찮습니다. 

공격을 한 상대방은 자신의 최선의 공격이 막히니 공격이 어려워 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 형제와 탁구를 꽤 재미있게 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보다 훨씬 실력이 좋아 제가 자주 경기에서 졌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하다보니 제 수비 실력이 많이 늘어, 가끔 이기다가 이제는 더 자주 이기는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야 내가 이제 저 형제보다 더 잘 치는구나.” 생각한 순간 그 형제가 그 동안 한번도 쓰지 않았던 새로운 서브를 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서브를 받는 순간 공이 제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고 테이블 밖으로 나가버리거나,  공이 테이블 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상대방이 공격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공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간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요? 

그래서 그 서브를 막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준비해도 잘 막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새롭게 넣은 서브가 원래 넣었던 서브의 동작과 거의 비슷해서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동작이 같고 오직 마지막 순간의 찰나의 차이이기에 분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즉 동작은 똑같이 보이는데 다른 서브가 들어오니 혼동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같은 동작인데 다른 회전의 서브가 들어와 고민하고 당황스러운 순간을 경험하며 우리 신앙의 여정도 탁구의 서브를 분별하고 막아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그래 이제는 사탄의 공격에도 나는 잘 방어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방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탁구에서 그동안 경험 해 보지 못한 서브를 맞닥뜨리는 것처럼, 내 삶에서도 당황스러운 삶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 막아보려해도, 많은 것이 같아보여도 이전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풀지 못한 채 현실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탄은 그렇게 우리를 속입니다. 

겉의 모습은 똑같아 보이는데 알맹이는 완전히 다른 회전을 주는 그런 탁구의 서브처럼 말입니다. 

탁구의 서브를 잘 받으려면 마지막 순간의 동작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듯, 나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문제들도 그런 분별이 정말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속에 담겨있는 즉 그 문제가 어떤 회전으로 나에게 오는지 알아내는 그 분별력이 정말 필요합니다. 

아무리 어렵게 보여도 일단 분별되면 탁구의 서브를 쉽게 막을 수 있듯, 인생의 문제도 그 다음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 있습니다.

사탄은 속이는 존재입니다. 존재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광명의 천사로 자신을 속이고 다가오기도 합니다.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그 속에는 언제나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분별력”입니다.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 믿음의 분별력으로 살아가는 그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장7절

세상은 오늘도 우리를 속이며 다가 올 것입니다. 그 속임수에 속지 않기 위해 오늘도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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