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배 목사2.jpg

 

손원배 목사

4장 . 직접 지식이란? ... 상

 

●히브리어 (yada 야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 동산 중앙에는 두 나무가 서 있었다.

앞에 쓴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주도하여 자신의 통로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직접 지식”(Knowing God)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주도하여 인간의 통로로 “하나님에 관하여 알게 하는 간접 지식”(Knowing about God)이 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직접 지식을 말할 때 (yada 야다, 알다, to know)라는 히브리 단어를 사용한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 집에서 자랐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나님에 관하여 들었을 것이다. 

그들도 성장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어, 성막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주관했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놀랍게도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선언한다.

“엘리의 아들들은...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사무엘상 2장 12절

여기서 “알다”는 동사로 사용된 히브리 단어가 "야다" 이다. 

야다는 하나님을 만나 교제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얻는 지식을 의미한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간접 지식을 많이 얻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다 곧 하나님을 아는 직접 지식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알 뿐,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제사장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을 직접 알지 못한 결과는 참혹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는 큰 죄를 지었다(삼상2:13-17). 

그 결과 그들 자신이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 뿐 아니라 가족과 백성까지 그들로 인해 참혹한 죽음과 고통을 당했다(삼상4:10-18). 

하나님에 관한 간접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홉니와 비느하느처럼 간접 지식만 가진 자들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 가정과 나라는 더 큰 고통과 저주에 빠진다.

 

●이 시대의 홉니와 비느하스들

 

목사의 직분도 소용없다. 

신학박사 학위도 소용없다. 

홉니와 비느하스도 아론의 후손으로 당대 최고 제사장들이었다. 

나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간접 지식”밖에 없다면, 내가 가는 길도 홉니와 비느하스의 길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도 많은 목사들이 사사 시대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에 관한 간접 지식만 가지고 설교도 하고 목회도 한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신학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간접 지식을 전수하며, 간접 지식으로 무장한 목사들을 대량 배출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간접 지식”만 잔뜩 축적했을 뿐이다. 

그들은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인간의 통로로 쟁취한 간접 지식은 저주가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통해 얻는 직접 지식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몰아낸다. 

이것이 바로 에덴 동산부터 시작된 지식의 저주이다. 

간접 지식이 창출해내는 저주의 악순환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야다의 의미

 

한글 성경은 창세기 4장 1절을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을 하여...”로 번역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번역은 틀리다. 

여기서 “동침하다”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yada 야다, 알다)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매 하와가 임신을 하여...”가 맞다. 

그렇다면 번역자들이 이것을 알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다를 “알다”로 직역하지 않고 “동침하다”로 바꾸어 의역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어 야다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야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지식이 아니라, 부부가 동침을 하는 것만큼 친밀한 교제를 통해 서로 알게 되는 직접 지식을 뜻한다. 

사무엘상 2장 12절 “엘리의 아들들은...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에서 쓰인 동사가 바로 야다이다. 

그들은 부모라는 인간의 통로로 하나님에 관한 많은 간접 지식을 얻었지만, 그들 자신은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고 그래서 부부가 동침하는 것같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통로로 하나님을 아는 직접 지식 야다는 없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목회자컬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