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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역대 최고의 대통령을 꼽으라면 역시 에이브라함 링컨이다.


내말이 아니고 갤럽 여론 조사 결과다. 


갤럽이 1999년 이후 일곱 차례 조사에서 링컨은 네 번이나 최고로 꼽혔다. 로날드 레이건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두 차례 1위로 뽑혔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해 매년 2월 셋째 월요일을 우리는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지키고 있는데 이때를 전후해 갤럽은 대통령 인기투표를 해 오곤 한다.


정파나 가치관에 따라 최고의 대통령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민주당 사람들이 보면 레이건은 미남 배우출신답게 얼굴이나 잘 생겼지 뭐 한게 있냐고 퉁명스럽게 말할지 모르지만 고르바초프와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와 함께 지구촌의 부흥을 견인한 인물이 아닌가?또 공화당 쪽에서 보면 케네디가 미국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아마 화를 내며 덤벼들 사람들이 적지 않을 법하다.쿠바 미사일 위기를 잘 넘기며 미국의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뉴 프론티어 정신으로 이 나라의 황금기를 이끌었다는 이런저런 찬사가 있지만 사실 케네디 때 기독교의 소중한 가치들이 와르르 무너진 게 한 두 개인가?


우선 카톨릭 신자로서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된 그는 정교분리주의, 공립학교 기도금지, 공공건물에서의 십계명 제거 등을 합법화시키는 등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 이미지를 훼손시킨 세속주의 대통령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이 최고라는데 시비 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흑인 해방의 아버지…그 업적 하나만으로도 그는 최고의 대통령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란 종이 한 장, 272개 단어로 된 그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오늘 날 까지도 민주주의 선언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일까? 언젠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역사학자들의 평가를 반영해 ''최악의 대통령 10명''을 선정한 적이 있다. 


여기서 불명예 1위는 흑인 노예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남북 갈등을 심화시킨 제임스 뷰캐넌이 꼽혔다. 


부패로 얼룩졌던 워런 하딩, 탄핵 재판을 받았던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 그 뒤를 이었다. 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 도중 사임한 리처드 닉슨도 공동 불명예 9위에 오르기도 했다.드디어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도날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미국도 놀라고 세계가 놀라고 있다. 이건 이변이 아니라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후보 TV토론에서 사회를 봤던 폭스 뉴스 크리스 월레스 앵커는 “미국 역사상 가장 희한한 승리”라고 말했다.


최고의 뉴스채널을 자처하는 CNN은 힐러리가 승리할 확률은 91%라고 전망했었다. 


트럼프는 9%에 불과했다. 그러니 CNN이 망신을 당하고 있다. 미국의 100개 신문 중에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곳은 단 두 곳 뿐이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 98개 신문이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었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리는 이변을 넘어 기적이란 것이다.


이번 선거는 Evil(악마)과 Idiot(바보)의 싸움이라고 보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둘 다 기피인물, 둘 다 비호감이었다. 클린턴이 싫어서 트럼프를 찍었다는 사람도 많았다. 



막말, 외도, 쪼다 소리를 듣는 트럼프였지만 투표함 뚜껑을 열어보니 그의 뒤엔 ‘앵글리 화이트(Angry White)’가 버티고 있었다. 


워싱턴 정가에 뿔난 성난 백인들,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느끼는 성난 백인들, 빈둥빈둥 놀면서 잘 먹고 잘사는 흑인과 히스패닉에 성난 백인들, 흑인 대통령을 세워봤으나 잘 나가는 게 없다고 절망감에 빠져있는 성난 백인들에게 정치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자신들의 화풀이를 정녕 담아낼 인물이라고 믿은 것이다.


힐러리가 선거 막판 가수 레이디 가가를 동원하고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까지 유세전에 끌어들였으나 앵그리 화이트는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첫 여성대통령, 첫 부부대통령의 꿈은 거기까지였다.앵그리 화이트는 이 나라의 정신적, 신앙적 가치가 너무 몰락하고 있다고 화가 났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 중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 중 하나가 동성애 합법화 판결이다. 동성결혼식장엔 신앙양심상 꽃을 팔지 않겠다는 꽃집주인에게 벌금 폭탄이 투하되고 비즈니스가 쫄딱 망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목격한 백인들은 미국이 이런 길로 가서는 안된다고 분노했을 것이다. 


민주당 정부는 사사건건 소수인종, 성적 소수자, 빈곤층만 싸고 돈다고 분노하고 있던 앵그리 화이트는 자신들의 속내를 감추고 투표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화난 백인들의 지지를 받아 백악관으로 가는 트럼프는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투표 하루 만에 조사된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 36%가 트럼프의 당선에 “두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당선이 “흥분된다”고 기뻐한 사람은 6%에 불과했다. 캐나다 이민을 문의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불이 나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시대가 열리면 그는 닉슨처럼 중도하차하는 불명예 대통령이 될까? 


아니면 함량미달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고 링컨이나 레이건 처럼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 반열에 서는 ‘모범적인’ 대통령이 될까? 


그의 당선이 기적이라면 어쩌면 임기중에 그런 기적을 연출해낼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기대를 가져보자. 그의 캠페인 슬로건처럼 Make America Great Again! 얼마나 희망적인가?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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