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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개신교 목사 부인 제1호는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다. 마틴 루터의 부인이다. 


1517년 10월 31일은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 나무로 된 정문에 교황청을 비난하는 95개 반박문을 써 붙여 종교개혁의 불쏘시개에 불을 붙인 날이다. 


그 날을 우리는 종교개혁일로 지킨다. 


종교개혁이란 말보다는 카톨릭교회 개혁일, 더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개신교 탄생기념일이다. 

그러니까 다음 주 10월 31일은 그 종교개혁 499주년이 되는 날이다.


95개 반박문을 써 붙일 때 루터는 당연히 숫총각이었다. 카톨릭에서는 지금도 사제는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루터는 그게 이상했다. 


남자가 독신으로 사는 게 맞다고? 


루터 생각은 “아니올시다”였다. 


에덴동산을 정밀 검사해 봐도 결론은 뻔하다. 남자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다는 게 하나님의 판단이셨다. 


그래서 남녀가 창조되었다. 


사제독신제도의 전통은 성경에 근거했다기보다는 구약시대의 관습과 희랍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치며 종교개혁의 횃불을 치켜든 루터에게 독신주의는 당연히 반성서적이었다.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제도로 믿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통해 존중해 주신 제도가 결혼제도가 아니던가? 


독신제도의 음지에서 성적 타락에 빠져있던 교회의 부패상을 청산하기 위해서도 성직자의 결혼은 필요하다는 게 루터의 견해였다.


이런 루터에게 다가선 여인이 바로 카타리나 폰 보라였다. 


그녀 역시 환속수녀였다. 


1517년 이후 루터는 ‘스타사제’였다. 


그의 명성이 자자하게 전 유럽으로 퍼져가기 시작할 때 그의 도움으로 비텐베르크 주변 한 수도원에 머물던 12명의 수녀들이 무더기 탈출에 성공했다. 


수도원을 드나들던 비린내 나는 정어리 생선 통에 숨어 빠져나온 것이다. 이건 스릴러로 찍어도 성공할 영화 소재다.


1525년 6월 23일 당시 42세였던 루터는 16세 연하인 26세의 카타리나와 자신이 살고 있던 검은 수도원에서 비텐베르크 시교회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개신교 제1호 결혼식, 그리고 제1호 개신교 목사부인이 탄생된 날이다. 


95개 반박문을 써 붙인지 8년 만에 루터는 자신의 믿음대로, 자신의 성경적 결혼신학의 소신에 의거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비텐베르크 시민들은 루터의 결혼소식에 신바람이 나서 축제를 벌였다. 1525년 이래로 지금까지 루터의 결혼기념일인 6월 23일이 되면 비텐베르크 시민들은 축제를 벌여오고 있다.


법학을 공부하여 세속적으로 출세를 기대했던 아버지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게 미안하게 느껴졌던 루터는 아버지에게 손자라도 안겨주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그래서 카타리나와의 사이에 아들 셋, 딸 셋 모두 6명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자식 풍년이었다. 

그러나 두 자녀가 일찍 세상을 떠나 루터를 슬픔에 잠기게 하기도 했다.


카타리나는 요즘말로 하면 ‘똑 소리’나는 사모였다. 


이들 부부는 루터가 거주하던 검은 수도원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다. 


이 수도원 건물주인 프레데릭 선제후가 선물로 준 집이었다. 


우리 신문주관으로 매년 실시되는 종교개혁 발상지 학습여행 때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집이다. 

지금은 ‘루터 하우스’란 이름으로 박물관이 되었다. 방이 무려 40개나 된다. 


그 넓은 옛 수도원 건물 안주인이 된 카타리나는 지하실에서 맥주를 만들기도 하고 돼지도 기르고 밭에 야채를 가꿔 집에 드나드는 식솔들을 거둬 먹였다. 


자식 외에도 페스트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들도 20여명도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항상 바글대는 대식구들과 함께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 시편 한편씩을 암송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카타리나는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살아야 하는 오늘날의 사모들과는 크게 달랐다. 


개혁신앙을 논하기 위해 찾아오는 수많은 루터의 동지들과 거침없이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식탁에서 주고받던 대화들을 묶어 탄생된 것이 ‘식탁담화’라는 것이다. 


더구나 수많은 사상적 반대파들의 도전과 협박을 받고 있던 남편 루터에게 카타리나는 영적 버팀목 역할도 했다.


어느 날 카타리나가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루터가 “누가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다. 카타리나는 “하나님이 죽으셨다”고 말했다. 루터가 화를 내면서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소리치자 그녀가 말하기를 “만약 하나님이 죽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고 낙심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루터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때마다 루터는 낙심을 털고 다시 일어나곤 했다.


그런 카타리나를 두고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새벽별’이라고 칭송했다. 


더 닭살 돋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만일 내가 아내를 잃는다면 비록 여왕이라 할지라도 나는 다른 여자와 다시 결혼하지 않으리라.”


루터가 카타리나에게 그랬다면 뭐 마다할 게 있을까? 


우리들도 사모님들에게 인심한번 크게 써보자. 


“사모님은 우리 이민교회의 새벽별”이라고.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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