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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얻고 있다. 

세 모녀가 동반자살, ‘짝’이란 짝짓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의 자살, 민주노동당 부대표의 자살, 며칠사이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자살사건이 있었다.

최근엔 LA에서 목회하다 한국으로 들어간 유명 목사가 지난해 사망했는데 그게 사실은 자살이었다고 뒤늦게 알려져서 또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자살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우울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지난해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의 아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권총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 릭 워렌 목사 부부는 정신 건강 목회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모든 교회가 정신건강 목회를 시작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중이다.

쉐퍼 인스티튜트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목회자의 70%가 우울증과 싸우고 있고, 71%는 탈진을 경험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72%의 목회자는 설교 준비를 위해 오직 성경만을 공부한다고 대답했고, 80%는 목회가 가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또 70%는 친한 친구가 없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던 큰 인물들이 있었다. 

대표주자가 마르틴 루터다. 그는 일기에서 “일주일 이상 죽음과 지옥의 문턱에 서 있다”고 고백할 만큼 우울증과 씨름한 흔적이 있다. 

영국의 명설교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도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아예 1년에 2-3개월은 강단에 서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증상이 중증이었나 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독교 영성가 헨리 나우엔도 평생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성경에도 사사시대의 삼손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 선지자 엘리야 등이 디프레션과 싸운 것으로 해석되는 인물들이다. 

삼손은 기분 변화가 심했고 사울왕은 두려움과 분노를 반복했고 엘리야는 좌절과 대인기피 증세가 있어 로뎀나무 밑으로 도망치기도 한 인물이다.

그런 ‘대가’ 들도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니 그들보다 더 복잡한 사회 속에, 더구나 이민목회란 특수한 상황에서 목회하는 한인 목회자들에게 우울증은 더욱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상담 전문가들은 목회자의 우울증이나 탈진은 주로 과도한 목회활동과 영적 고갈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목회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잘 나가는 목사와 비교해서 찾아드는 상대적 무력감 등이 목사들을 괴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민목회자들에게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목회의 실패를 즐기시라고. 너무 잘하려고만 애쓰지 마시라고. 목회가 망가질지라고 인격은 망가지지 마시라고. 그게 성공하는 길이라고 . . . .

LA 지역에서 설교 잘 하는 목사라고 소문이 자자하고 목회 성공했다고 여기저기 칭찬이 쏟아지던 목사들 가운데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추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자 문제 때문에 꼬리를 자르고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하고 있다. 교계의 지도자요, 단체장이라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신문에 오르내리던 목사가 하루아침에 교회에서 짐을 싸가지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교회 돈을 잘못 건들인 게 들통이 난 것이다. 

한국으로 금의환향하여 한국 교회의 차세대 리더라는 칭송을 들으면 무엇하는가? 

가짜 박사 소동으로 명예가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그 성공의 금자탑이란게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목회 기술자로 성공 했다 해서 그게 무슨 유익이리요. 

행실이 부정하여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 보다 목회는 죽을 쑤어 B급, C급 목사라고 세상에선 천대(?)받을 지라도 인격 성공자가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다면 어느 길이 과연 그 인생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길이겠는가?

큰 교회 목회를 시기하지도 말고 질투할 필요도 없다. 

만석꾼은 만가지의 걱정, 천석꾼은 천가지 근심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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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 실패하는 목회를 즐기자. 
그것을 자신의 무능으로 탓하지 말자. 

누군가와 비교하여 실속 없는 열등감에 휘둘리지 말자. 

교인이 적어 심방갈 일도 흔치 않으니 그 시간에 낚시도 가고 등산도 가고 양노원에 가서 자원 봉사를 하면 어떠리.

월요일이면 퍼블릭 골프장에 나가서 골프로 한나절을 즐겁게 소일하고 극장에 가서 요즘 개봉된 ‘하나님의 아들’도 감상하시라. 

월급이 쥐꼬리 수준이라고 인생이 쥐꼬리는 아니지 않는가? 
쥐꼬리에 맞는 청빈을 훈련하는 삶이 오히려 부요한 인생임을 보여주시라. 

신학교 때 만난 친구 목사들과 시시덕거리며 천진난만하게 막 되먹은 소리도 입에 담아보시라.
큰 교회 만들어 보려다 정신이 병드는 목사보다는 작은 교회 목회를 즐거워하며 정신이 건강한 목사가 훨씬 더 거룩한 목사요, 능력의 종이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그릇만큼, 그 그릇에 최선을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겸손한 목회! 
어디 ‘우울마귀’가 거기 범접하리요.

거룩과 경건을 위장한 채 목회 성공자가 되기 위하여 시기하고 질투하고 반목해온 치졸한 경쟁심을 회개하자! 

제법 잘나가는 목회를 하고 있다는 쪼잔한 우월감도 벗어버리자. 

결국은 그게 디프레션과 ‘번 아웃’을 불러드리는 부메랑임을 기억하자.

너무 서두르다 숨이 차니까 자살하는 것 보다 급하지 않은 나그네 발걸음으로 오래오래 이 땅을 즐거워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징표 아니겠는가?

<크리스찬위클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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