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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스기빙데이가 다음 주로 다가왔다. 

대통령 선거에서 한쪽은 이겼다고 외치고 한쪽은 "사기당했다"고 우기면서 몽니를 부리다 보니 좋아라 춤 추는게 바이러스다. 

"너희들은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가련다," 그런 식이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전국에서 다시 자택대피령이 발동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이미 캘리포니아는 거의 모든 카운티에서 실내영업중단, 실내예배 중단 명령이 떨어졌다.

댕스기빙데이는 한국의 추석 아닌가?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번 모이는 미국의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최대 명절이 코로나 때문에 금년엔 완전이 '코로나기빙데이'가 될 참이다.

가족이 다 모이진 못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댕스기빙.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춥고 가난한 첫해를 지내고 정착 1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니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감사하면서 잔치를 벌인 첫 번째 댕스기빙처럼 코로나가 박멸될 희망은 아직 전무하다 할지라도 그래도 역경 중에 감사하며 금년 감사절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도 미국 살면서 추수감사절엔 빼놓지 않고 식탁에 칠면조를 올렸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미국에 왔으니 미국명절을 따라야 한다는 이민자의 눈치 빠른 안목으로 매년 칠면조 고기를 먹긴 했으나 사실은 그걸 왜 먹어야 되느냐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 때도 있기는 했다. 

명절이면 우리 식대로 'LA갈비'나 삼겹살에 상추가 훨씬 어울리는 메뉴가 아닌가? 

그런데 아내가 마련하던 감사절 식탁 준비가 몇 해 전 부터는 세대교체가 되었다 이젠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바톤 터치를 해 준 셈이다.

아들과 딸은 성탄절, 감사절, 부활절 등 절기 음식 만드는 데는 도사가 되었다. 

내가 봐도 A급이다. 

그런데 퍽퍽해서 먹을 수 없었던 칠면조가 서서히 먹히기 시작했다. 

세대교체가 되면서 부터다. 

요즘엔 친절하게 미리 구워낸 '레디 투 이트' 칠면조를 그냥 사다 먹으면 되는 것을 아이들은 반나절씩 씨름해 가며 꼭 오븐에서 그걸 구워낸다.

그러나 칠면조 고기에 익숙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제조건 하나가 있다. 

반드시 크랜베리 소스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칠면조 고기는 크랜베리 소스가 없으면 앙꼬 없는 붕어빵이라는게 내 주장이다.

나는 미국엔 베리가 많기는 하지만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랩스베리 그런게 있는가 보다 했다. 

어느 해 이맘 때 보스톤 지역을 여행하면서 비로소 크랜베리의 존재감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농가지역을 지나는데 완전 핏빛으로 물든 빨간 저수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저수지 위에 떠 있는 건 크랜베리였다.

흔히 크랜베리 농사를 '땅에서 키워 물에서 캔다'고 말한다. 

크랜베리는 땅에서 키워 열매를 맺지만 다 익어 추수할 때가 되면 밭에 물을 곱빼기로 채워 넣고 그 물위에 열매를 띄워서 수확한다. 

즉 수상 트랙터를 이용해 덩굴에 달린 열매를 따다보면 내부에 공기주머니가 있는 크랜베리는 물에 동동 뜨게 되고 이때 진공 펌프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대형 트럭에 실어 담고 그걸 가공 공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름하여 '수경수확법'.

이 수경수확 때문에 크랜베리 경작지를 농장(farm)이라 부르지 않고 보그(bog·늪지)라고 부르는데 10월쯤이 되면 수경 수확을 구경하러 오는 미국인들에게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관광코스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이 '크랜베리축제'다. 수년 전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 저 핏빛으로 물든 저수지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으며 크랜베리가 수놓은 장관에 감탄한 적이 있다.

앵두와 비슷한 모양의 크랜베리는 미국에선 포도, 블루베리와 함께 3대 과일로 꼽힌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매년 4억 파운드의 크랜베리를 먹고 있는데 그중 20%는 댕스기빙에 소비된다고 한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캐나다, 칠레에서 생산되는 크랜베리가 세계 생산량의 98%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대 생산국은 역시 미국이다.

우리는 댕스기빙데이에 칠면조와 크랜베리지만 영국인들은 댕스기빙보다는 크리스마스 때 터키와 크랜베리를 꼭 먹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한다.

시큼해서 도무지 맨입으로는 못 먹을 크랜베리지만 소스나 주스로 만들 경우 최고의 영양제로 변신하는 과일. 

우선은 뇌졸중 및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복합물로서, 심장 및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준다. 로바스타틴이란 콜레스테롤 약을 매일 복용하고 있는 나는 이번 감사절에도 꾸역꾸역 터키에 크랜베리를 얹어 보약삼아 먹어두어야 할 이유 또 하나는 이것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강력한 항산화 폴리페놀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암을 예방할 수도 있다니 얼마나 유익한가?

뉴잉글랜드 지역 들녘에서 하염없이 피어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눈길도 받지 못한 채 피고 지다가 마침내 청교도들의 손에 의해 감사절 식탁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미국인들의 사랑받는 3대 과일로 등극하였으니 지금도 청교도 하면 떠오르는 게 크랜베리다.

그래서 그냥 먹다보면 공짜래도 반갑지 않은 맛없는 칠면조 고기를 군침 돌게 바꿔주는 크랜베리는 칠면조, 청교도와 함께 추수감사절를 상징하는 3대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맛없이 살고 있는 칠면조? 아니면 맛없게 살고 있는 누군가의 맛깔스러운 크랜베리? 코로나 때문에 단절이 일상화된 요즘 누군가의 달고 새콤한 크랜베리처럼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면서 감사절 식탁을 맞이한다면 다음주 명절은 더욱 근사할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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