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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건축의 특징이 담긴 서울 종로구 체부동교회의 전경. 이 교회 건물은 

이달 말 서울시로 이관될 예정이다. 체부동교회는 지역 복음화와 선교에 힘쓰며 

서울 신길교회와 신촌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한 세기 가까이 한 곳을 지켰다. 


일제의 탄압도, 포화가 오간 동족 간 전쟁도 겪어냈다. 


그러나 긴 세월 한자리에서 버텨 온 뚝심은 현대의 경제논리에 꺾이고 말았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체부동교회(염희승 목사) 이야기다. 


이 교회는 이달 말 서울시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지역의 높아진 임대료로 원주민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인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탓이다. 

서울시는 체부동교회 건물의 건축사적 의미를 높게 사 지난해 매입을 결정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 교회는 같은 단에 벽돌의 긴 면과 짧은 면이 번갈아 보이도록 쌓는 ‘프랑스식 쌓기’로 지어졌다. 


해방 후 교회를 증축할 때는 영미권의 영향으로 한 단에는 긴 면만, 다른 단엔 짧은 면만 보이도록 하는 ‘영국식 쌓기’가 활용됐다. 


체부동교회는 그래서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의 벽돌건축물로 평가 받는다. 


지난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체부동교회가 남긴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그간 펼쳐 온 사역은 한국교회사에 크고 작은 열매를 맺었다. 


체부동교회는 1924년 무교정교회(현 중앙성결교회) 지교회로 김국진(1885∼1967) 장로의 집에서 출발했다. 교회는 OMS(옛 동양선교회)의 후원으로 현재 위치에 초가집을 사뒀다가 1931년 그 자리에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  한국교회역사연구원장 김수진 목사는 “당시 체부동교회는 매주 금요일마다 어린이들을 모아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교회 유년학교의 시작이었다”며 “성도 수가 200여명 이상으로 늘어 일제의 감시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일제는 체부동교회가 강한 재림사상을 보인다며 꼬투리를 잡아 1943년 강제로 폐쇄시키고 빵 공장으로 운영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성도들은 예배당을 회수해 재건한 뒤 전도와 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1922년부터 발간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의 월간지 ‘활천’의 1968년 기록에는‘모범적인 주일학교’사례로 소개됐다. 


당시 유년주일학교 어린이의 재적인원은 180명, 교사는 25명으로 6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저녁 특별집회를 열고 도서실을 운영했으며 기성 최초로 겨울성경학교를 열었다.


1969년에는 ‘조직적이며 분위기 좋은 교회’의 사례로 실렸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체부동교회는 어린이 주일학교와 학생주일학교, 청년회(20대), 성우회(30대), 남녀전도회(20∼50대), 시몬과 안나(60대 이상) 모임 등을 조직해 세대별 활동을 활발히 했다. 


인근의 65세 이상 노인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나누는 경로회 행사도 열었다. 


기록에는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게 바뀌어 매일 교회 앞마당을 청소하는 노인까지 생겼다고 나와 있다. 


체부동교회는 교회 설립에도 힘썼다. 


1946년 초 개척요원으로 장로 권사 집사 각 1인을 서울 신길동에 파견했고 신길동 95번지에 400평 대지를 매입했다. 


그해 겨울 헌금을 전달해 신길교회(이신웅 목사)를 세웠다. 1955년에는 신촌교회(이정익 목사), 1982년에는 의정부에 화평교회(신만교 목사)를 세웠다. 


체부동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1997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건물을 지어 교회를 이전했다. 

이름도 영광교회로 바꿨다. 


그러나 체부동의 교회 건물은 그대로 보존해야 했기에 같은 교단의 염희승 목사가 양도받았고, 체부동교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며 목회를 이어갔다. 


체부동교회는 그대로 자리를 지켰지만 주변의 상황은 점차 변했다. 

서촌이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유동인구가 급증했고, 땅값은 15년 사이 10배 이상 높아졌다. 

관광객은 붐볐지만 주민들이 떠나면서 교회에 위기가 찾아왔다. 주일이면 성도들로 발 디딜 틈 없던 교회는 점차 비어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을 결정한 현 체부동교회 성도들은 교회건물이 헐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014년 서울시에 매각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교회 본당 340.82㎡와 부속건물인 한옥 79.34㎡를 사기로 결정했다. 


이달 말 교회 측에 잔금을 모두 치르면 소유권은 서울시로 이전된다. 서울시는 체부동교회를 미래유산으로 등록해 보존할 계획이다.


현대기독교연구소장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는 “서울시가 근대건축의 특징이 담긴 교회 건물을 매입해 보존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오랜 기간 지역을 지키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교회가 밀려나는 현실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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