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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연평교회 군종목사 최믿음 대위(진급 예정·왼쪽)가 지난 3일 연평도 부근 해상전진기지에 승선, 해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프로그램 ‘행복 플러스’를 진행하고 있다. 한 병사가 자신이 쓴 감사의 편지를 읽어주고 상대를 포옹하고 있다.

"4열 종대로 집합한다.  실시!" 

지난 3일 오후 인천항에서 고속페리를 타고 연평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일제히 내린 군인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들은 연평항에 도착하자마자 체열을 받았다.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체열을 기다리는 병사들의 얼굴엔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투복과 정복 차림의 해병대원이 많았고 해군 수병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휴가와 출장 등을 나왔다가 복귀하는 중이었다.

표정은 어느새 굳어졌다.
메르스의 위세가 인천항에서 122㎞ 떨어진 연평도까지 미치고 있었다. 

서해5도 최대 격전지  

연평도는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우도를 포함한 서해5도의 하나로 북방한계선(NLL)과 불과 1.5㎞ 인접해 있다. 

지금은 꽃게 잡이로 유명하지만 과거엔 조기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현재의 연평도는 한반도 최대 ‘화약고’가 됐다. 
6·25 이후 최다 국지전이 발발한 현장인 것이다. 

1998년 1차 연평해전 이후 2002년 2차 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의 포격 도발이 발생했다. 

북한의 포격은 포탄 170여발을 2차례에 걸쳐 퍼부으며 이루어졌다. 
당시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했고 민간인 2명이 숨졌다. 
이날 들른 ‘연평도안보교육장’에는 포격 당시의 순간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3년 전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 현장은 처참했다. 

연평도에서 불과 3㎞ 떨어진 석도는 NLL에 걸쳐 있는 무인도였다. 
좌측으로 갑도(5㎞)가 보였다. 

‘갈도’로 불리는 이 섬은 지난 3월부터 북한이 군사시설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포 기지를 설치하고 있어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바로 뒤 장재도(7㎞) 역시 선명히 보였다.
NLL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바닷물 빛깔은 달랐다. 


"2010년을 잊지 말자" 

전망대 아래로 차를 타고 내려가자 해병대 해안소초를 만났다. 
해안소초는 육군으로 말하면 최전방 GOP 부대다. 
24시간 경계가 주요 임무다. 
소초장 이한솔 중위는 “북한군의 움직임이나 해안포 상황, 중국어선 출몰 등에 대비한 경계근무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야간 근무자는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눈뜨고 있어야 한다.  
소초 안 생활관 입구에는 K-9 자주포 사진과 함께 ‘잊지 말자 2010.11.23’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복도에는 해군에서 배포한 ‘북·중(北中) 어선 식별도’ 사진이 부착돼 있어 병사들은 이를 숙지했다. 
이 중위는 “5㎞ 전방에 북한군이 있기 때문에 초병들에 대한 임무 숙지와 교육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병사들은 빈틈없이 지킨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만난 해병대원들은 강인해 보였다. 

짧게 깎아 올린 ‘돌격형’ 머리와 훤칠한 키, 전투복이 꽉 차 보이는 근육질 몸매는 보통 군인과는 달랐다. 
오른쪽 가슴에 달려 있는 진한 붉은색 바탕에 노랑색으로 새긴 이름표는 이들의 존재를 극명히 드러내 보였다. 
한 병사는 자신의 이름표를 가리키며 “피와 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수요일. 
오전에는 정훈교육, 오후엔 전투체육이 있는 날이다. 

보통 오후엔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연평도부대는 최전방이어서 저녁에 예배를 드렸다. 

예배에 앞서 해병대연평교회 군목 최믿음(29·기하성) 대위(진급 예정)가 해안소초 병사를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했다. 

“여러분, 선택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행복은 상황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근무하느라 힘들지 말입니다. 그래도 감사를 선택하면 행복해집니다. 이 시간에 여기 모인 대원 중 감사할 대상을 선택해 편지를 써봅시다.”  

15명의 해병대원은 어리둥절한 가운데 최 목사의 지시를 따랐다. 
감사편지 종이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대원 한 명의 이름을 적었고 단문의 편지를 썼다. 
잠시 후엔 감사 대상자 이름을 불러 함께 나오게 했다. 
오랜만에 긴장이 해소됐다. 

얼굴은 어느덧 앳된 대학생, 청년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감사를 표하면서 서로 안아줄 때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연신 웃었다. 
이어지는 자신의 장점 발표도 재미가 넘쳤다. 
“눈동자가 매력적입니다” “여친이 있습니다” “허벅지가 튼실합니다” 식당은 또 한번 웃음바다로 변했다.

해안소초 병사들은 교회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최 목사는 ‘찾아가는’ 예배와 인성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연평도 인근 부대도 최 목사 관할 지역이어서 우도와 소연평도 경계병, 해군 소속 해상전진기지에도 방문해 병사들을 보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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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연평교회 수요예배가 지난 3일 저녁 열렸다. 장병들이 찬양을 부르고 있다.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 

최 목사는 이날 해안소초 방문에 앞서 연평도 최전방 해상전진기지를 방문했다. 
 예배를 위해 매주 수요일과 주일에는 작전용 고무보트의 일종인 ‘대잠립’을 타고 해병대연평교회를 오간다. 

최 목사는 이곳에서도 감사편지를 쓰고 발표하도록 했다. 

가장 많은 감사 표시를 받은 사람은 주임상사인 이종필 병기대장이었다. 

이 상사는 “섬 같은 기지에서 2년을 보내는 병사들이 많아 장난도 치고 고민도 들어주는 편”이라며 “쉬지도 못하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수병들이 고생이 많다”고 말했다. 
해병대연평교회 수요예배에는 해병대와 해군에서 20여명의 병사들이 참석했다. 

예배에 앞서 뜨거운 찬양을 드렸고 병사들은 졸지도 않고 설교를 들었다. 
최 목사의 설교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주일설교에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수요일에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주제로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해병대 수색대에서 유일하게 참석한 이철희(23) 병장은 “주일예배와 수요예배에 빠지지 않고 온다”며 “예배에서 얻은 힘으로 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병대연평교회는 1975년 8월 18일 1대 군종목사가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92년 12월부터는 군 선교에 박차를 가하며 부대본부 입구에 군교회를 지었다. 

연평도 포격 당시엔 대위 하승원 목사(기하성)가 고 서정우 하사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부대 내 장병들에게 물티슈와 양말을 전달하며 군종활동에 임했다. 

서 하사는 휴가를 떠나다가 포격이 시작되자 부대로 복귀하던 중 포탄이 떨어져 전사했다. 

교회는 지난해 9월 29일 광림교회가 10억원을 후원해 섬의 가장 중심인 육거리에 신축 교회를 봉헌했다. 

매주 100∼120명이 출석하고 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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