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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안산 동부교회 장로 김철회(57·경진특수인쇄 대표)·허경옥(57) 부부는 자식 출가시키고 손주 기다리며 살아야할 분들입니다. 

안정된 노년을 위해 계획도 세워야 하고요.

그런데 이 부부에겐 9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7남2녀입니다.

막내 요셉이 이제 두 돌 됐습니다. 

장남 바나바(26)는 중국 하얼빈공대를 졸업하고 귀국해 직장을 다닙니다. 

그 아래로 모세(중3), 에스더(여·중2), 보라(여·초등6), 찬영(초등5), 사무엘(초등3), 다니엘(초등2), 요한(유치원) 등으로 이어집니다. 

요한과 요셉은 아직 어려 나이든 엄마를 한시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부부는 말씀 안에서 양육합니다. 

부부는 노모(정종봉 권사·82)도 모시고 삽니다. 

지은 지 23년 된 165㎡ 아파트에서 삽니다. 

옛 넓이 기준으로 50평쯤 됩니다.  

지난 3일 이들 부부와 교제를 이어온 안산 한마음교회 이경석 목사와 함께 ‘바나바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평일이라 모두 제 할일 하러 나가고 요셉과 요한만이 거실에서 엄마·할머니와 놀고 있었습니다. 


"버림과 학대" 결핍장애로 나타나

아홉 자녀는 호적상 ‘친자’입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친자가 없습니다. 
모두 입양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호적에 친자라고 썼습니다. 
‘양자’로 쓸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러면 대가족이 사는 집안은 어떨까요. 
어수선하겠지요. 

부부는 손님이 왔으므로 여기저기 치웠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낙서, 뜯어진 벽지까지 손 볼 순 없었지요. 
거실 소파는 ‘날아다니는 사내놈’들로 인해 푹 꺼졌습니다. 
군색스럽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 허 집사와 노모 정 권사 표정을 보면 압니다. 
늘 밝습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엄마’ 허 집사에게 “허리디스크나 오십견 등 그냥 있어도 아플 나이이신데…”라고 하니 “안경 낀 정도가 전부 일뿐 아파 본 적 없다”고 말합니다. 

할머니도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습니다. 

손자 손녀를 봐주시고, 데리고 자니까요.  

그렇다고 아홉 자녀가 신체적으로 다 건강하냐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떤 형태건 결핍과 장애가 있습니다. 

‘버림과 학대’가 손상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아홉 자녀를 모자람 없이 키울 만큼 부자도 아닙니다. 
김 장로는 직원 1명 데리고 인쇄업을 합니다. 
대개의 가정이 그렇듯 빚 안고 삽니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태권도학원 수강비 30만원’ ‘피아노교습 20만원’ ‘영·수 과외비 40만원’ ‘발레교습비 15만원’ ‘학습지 40만원’ 등 돈 들어 갈 구멍이 줄줄이 열렸습니다. 
학습지가 여러 아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답니다. 



아홉 자녀 입양 
가족의 탄생 

그렇다면 바나바네 가족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가족의 탄생’을 들여다봤습니다.

각기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과 화성군 조암면이 고향이었던 부부. 

김 장로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사꾼의 3남 1녀 가운데 장남이었습니다. 한데 그 아버지가 김 장로 여덟 살 나이에 미군 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과부’가 된 정 권사는 자식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서울로 식모살이를 떠났습니다. 
생떼 같은 자식들 굶겨 죽일 순 없으니까요.  

어린 철회는 남사초교 4학년 때 외암교회를 다닙니다. 
선교사들이 주는 사탕의 유혹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미션스쿨 남사중학에 진학하며 신앙이 본격적으로 깃듭니다. 

경남 거창과 경기 오산·용인에서 사역하며 전쟁고아를 키운 윌버 맥카비 선교사와 그 후임 이수원(더글라스 니이스웬더)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지요.

한편 비교적 형편이 나았던 어린 경옥. 
중학 무렵 개척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얌전한 시골처녀였습니다. 

그녀에겐 지적장애가 있던 고모가 한 분 있었습니다. 

그 고모를 할아버지·할머니가 늘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사랑 받는 고모를 보며 그 보호가 하나님이 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20대 철회씨는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인쇄기술을 배웠습니다. 

경옥씨는 고향 장안중학 서무과에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경옥씨의 친척 목회자 소개로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습니다. 
신앙이 배우자의 첫 조건이었지요. 그들은 신혼살림을 인천 부평에 차렸고 그 친척 목회자가 하는 부평교회를 섬겼습니다. 

지금의 안산교회입니다. 

교회가 부평서 안산으로 이전 개척하면서 따라 이사한 거죠. 
철회씨는 "교회 '맥가이버'(만능맨)였다"고 합니다. 

부부는 안산에 정착하면서 트럭행상을 했습니다. 
서울 가락동서 야채를 떼다 팔았습니다. 

지하 개척교회를 섬기기 위해 돈을 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년 뒤 인쇄업으로 전환했지요. 

이렇게 신앙생활에 열심인 부부에게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겁니다.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경옥씨는 죽을 맛이었겠죠.  

"시할머니가 '씨가 있어야 하는데…'하는 정도였지 시어머니와 남편 모두 뭐라 하시지 않았어요. 영적인 자식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 육신의 자식만 귀한 건 아니잖아요. 육신의 애 달라고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어요. 시어머니와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고요." 

26년 전. 부부는 영적인 자식을 기르기로 했습니다. 

아내 허 집사가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허 집사는 야고보서 1장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는 말씀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장남 바나바는 미숙아였습니다. 

미혼모가 어떻게든 낳지 않으려고 갖은 낙태 방법을 썼습니다. 

그 바나바 친모가 다니던 산부인과 원장은 크리스천이어서 낙태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부부가 첫 입양한거죠. 

결핍의 증세는 유아 때부터 나타났습니다. 

산만했죠. 

초등학교 때 담임이 "다른 친구 수업에 방해돼 가르칠 수가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사춘기 접어들어선 "죽게 놔두지 왜 입양했느냐"고 대들었습니다. 
친모를 찾으면 때려줄 거라고도 했습니다. 

부부는 아침저녁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인품이 나타나게 해달라고요.


"여느 가정이 그렇듯 
지지고 볶고 삽니다" 

부부는 지금 열 번째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서울·경기권에선 기관 입양이 불가능합니다. 입양기관들이 부부의 나이 등을 고려할 때 힘에 부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부부는 얼마 전 제주의 한 아이를 알게 됐습니다. 
눈에 밟힌다고 합니다.  

부부의 아홉 자녀는 누구 하나 그늘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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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8인승 차로 교회 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지지고 볶고' 하는 평범한 가정이죠. 다만 식구가 많을 뿐입니다. 그 '수퍼맘' 허 집사는 "아무리 바빠도 성경읽기와 기도를 뺄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게 양육의 힘이라는 거죠. 

'수퍼 대디' 김 장로는 "자녀들에게 (내가 키웠다고)뭘 기대하지 않는다"며 "성경에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 읽으란 얘기는 없어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마 9:23∼25)고는 했으니 나도, 아이들도 자기십자가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인품이 가정·가족을 보호해 준다는 거죠. 

바나바의 가족은 세상적 생각으로 걱정이 됐습니다. 

하지만 '자기십자가'란 얘기에 되레 그런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말씀 안에서 '지지고 볶는' 행복한 바나바네 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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