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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담임>


예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에 올라가셔서 피 흘려 죽기까지 인류의 죄로 인한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죄와 저주에서, 영원한 사망과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죽을 일이 있다면 내가 대신 짊어지리라 각오하는 자가 직분자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십자가의 정신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 제가 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하고 하소연하기에 "어떤 십자가가 그렇게 무겁습니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예수 믿는다고 우리 남편이 얼마나 핍박하는지 모릅니다.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핍박이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 가난합니다. 가난의 십자가가 제게 너무 버겁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것도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가난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십자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셨음이라"(갈 3:13)는 말씀대로 십자가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셔서 인간의 죗값을 갚아주시고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 담당하셨던 저주의 나무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30년동안 요셉의 집에서 목수 일을 도와가며 가난하게 사셨지만 그것을 '십자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땅에서 온갖 고통과 수모를 당해도,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 돌을 들고 쫓아다니는 자가 있어도, 바리새인들이 책잡으려고 힐난하고 핍박을 해도 그것을 '십자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죄가 전혀 없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칭했다는 신성 모독죄를 뒤집어 쓰고 죄인 취급을 당하면서도 당치도 아니한 저주의 나무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을 '십자를 졌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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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무조건 십자가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남의 죄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죄로 당하는 고통을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섬긴다는 것은 아무 잘못없는 사람이 남의 죄를 짊어지고 남들이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죽일놈이다."라고 해도 아무소리없이 자기가 죄를 진것처럼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 취급을 당하여 내 죄의 누명을 쓰고 끝까지 입을 벌리지 않으신 것이 주님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하나도 없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인류의 죄의 누명을 씌워 죽이기까지 죄인 취급하였어도 입을 열지 않으신 것이 십자가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집사나 권사나 장로 중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뒤집어 쓰고 십자가를 질 직분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오히려 십자가를 벗으려고 내가 언제 그런 잘못을 했느냐고 변명하기 바쁩니다.

항존직인 장로나 권사가 아무 잘못없이 죄의 누명을 쓰면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며 한사코 누명을 벗으려 항변합니다. 

절대로 "제가 잘못했습니다."하며 남의 죄를 뒤집어 쓰려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잘못한 사람을 찾아가 정죄해서 결국 그 사람이 교회를 나가게 만듭니다.

때로는 "목사님이 하라고 해서 했잖아요!"하면서 목사를 불법자로 몰아세워 결국 목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내쫓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속> 
<연세중앙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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