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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담임>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제한없이 주의 일에 쓰십니다.
제가 열여섯 살 때 일입니다.

하루는 교회 직분자를 임명하는 시간에 목사님께서 제 이름을 부르시기에 왜 부르시나 봤더니 "제 3구역장에 임명한다"라고 말씀하시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제 고향 교회를 담임하신 그 목사님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를 많이 키워내신 분입니다. 

그처럼 성령이 충만하고 늘 기도하시며 유명한 부흥사를 많이 길러내신 목사님이 왜 겨우 열여섯 살인 제게 구역장이라는 직분을 맡기셨을까요?

어른들도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비록 나이가 어릴지라도 성령께서 그 사람을 붙들고 일하실 테니, 성령께서 일하실 줄 믿고 구역장 직분을 맡긴 것입니다.

그때 제가 맡은 구역 식구가 자그마치 63명이나 되었는데, 구역장 임기 일년을 마치고 나니까 모두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제가 한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저를 쓰셔서 그런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 제가 삼십대 때일입니다.

그때 다닌 교회는 상당히 교회 규모가 크고 성도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러 다른지역에 가실때 새벽예배 설교를 집사인 제게 종종 맡기셨습니다.

그교회에 부목사가 상당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럴때면 저는 직장에 다녀와서 기도하여 성령이 충만해져서 새벽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많은 성도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집사인 제게 왜 새벽예배 설교를 시키셨을까요? 

부목사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도 사도들이 많았는데 왜 스데반이 나섰습니까?

스데반 집사가 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고, 또 여러회당과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변론할때도 성령과 지혜로 말하니 저들이 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스데반은 그 일로 산헤드린 공회에 잡혀갔고 재판에서 이스라엘 고위층 인사에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속주가 되신다고 증거하고, 예수를 배척한 유대인을 격렬하게 책망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행 6:8~7:60). 

이렇게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있는 자는 성령께서 제한없이 순교하는 자리에까지 영광스럽게 쓰십니다.

그러니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지 못하면 직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없은 자가 직분을 맡으면 그 교회는 부흥은 커녕, 그들이 맡은 영혼까지 망하고 맙니다. 
중직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교회 일에 총대를 메고 듣기 싫은 소리 들어도 주를 위해서 앞장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사람은 뭔가 자기에게 불리할 성싶으면 그일에서 쏙 빠집니다.

이런 사람하고 어떻게 생사를 같이 하겠습니까?

직분은 주의 일에 담임목사와 생사를 같이할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제자'라는 직분이 있어도, 주님이 잡히시자 자기들도 예수와 같이 죽임을 당할까 봐 고기 잡으러 다시 갈릴리 바다로 가버렸습니다.

"죽을지언정 주님을 따르겠나이다!"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도 닭 울기 전에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우리도 직분을 받으때는 "아멘!" 하지만 막상 주의 일로 어려움에 부딪히면 못하겠다고 포기하고 인본주의로 돌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직분에 죽도록 충성해야할 이유가 없으니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을 택해 집사로 세웠을때, 하나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졌습니다(행 6:7).

초대교회 직분자들이 그렇게 영혼관리를 잘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직분자가 교회에서 기관이나 구역을 맡았다면 기관식구나 구역식구가 교회 오든 말든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쫓아가서 교회 안 나오면 안된다고, 예배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혼이 살아야 한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영혼을 살리려는 예수 정신으로 직분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예수정신은 오직 성령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성령과 예수 정신으로 직분을 감당하지 않고 직분임기가 끝나버리고 만다면,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쓸모있다고 믿고 직분을 맡겨주셨으니 하나님께 크게 인정받은 것입니다.

인정받은만큼 주님을 실망시켜드려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성령안에서 신앙인격적인 양심입니다.

초대교회 직분자들은 교회 여러일을 두고 두루 살피고 영혼 관리를 잘하여서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할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능력이 나타나는지 "허다한 제사장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고 했습니다.

그시대에 제사장들이 어떻게 어부, 석수장이, 세리 출신인 제자들의 말에 복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령께서 일하셔서 그들이 전한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니까 제사장이라도 복종하게 된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담임목사에게 권세와 능력잉 넘치는 설교말씀을 듣고 싶거든, 직분자들이 초대교회 집사처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맡은 사명을 확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목사가 아무걱정없이, 기도와 말씀 전하는 사역이 넘칠때 생명과 능력의 권세가 왕성하게 약동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직분자가 생명력 있게 쓰임받을 것입니다.

<연세중앙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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