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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는 기독교인에게 신앙적 고민을 던졌다. 기독교 신앙을 ‘믿고 복 받는’ 것쯤으로 이해했던 사람들에겐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 아니하시는’ 하나님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하나님은 이 참사를 그대로 외면하고 계실까. 

기독교 고전 영성가들에 따르면 그것은 순전히 인간들 편에서의 질문이다.
신앙 선배들은 기독교 신앙이 현세적 복을 약속한다고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신앙을 영적 광야와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 표현했다. 

씨름과 통찰, 승리와 패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였다.

이 책은 기독교 영성가로 불리는 고전적 그리스도인 신앙의 유산을 정리했다. 

영적 성장과 훈련, 죄와 유혹, 절대적 순복, 고요하고 겸손한 삶, 죽음·고난 등의 주제에 대해 48장에 걸쳐 풀어냈다. 

각 장마다 28명의 고전적 영성가들의 사상을 담았다.

저자가 인용한 영성가들의 스펙트럼은 꽤나 다양하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나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17세기 청교도 영성가 존 오웬까지는 그래도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15세기 동방정교회 배경의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저자 요한 클리마쿠스나 16세기 십자가의 요한, 아빌라의 테레사 등은 낯선 이름들이다. 

영국 성공회 신부 윌리엄 로(18세기)나 프랑스 상류층에 영향을 끼쳤다는 신비가 프랑수아 페넬롱(18세기) 등도 생소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이 던지는 울림은 수백 년이 흘렀어도 힘과 무게가 넘친다. 

십자가의 요한으로 불렸던 신앙의 선배는 욥과 같은 시련을 맞은 사람들을 대하는 지도자들을 향해 이런 말을 남겼다. 

“오히려 지금은 그 사람들을 혼자 두어야 할 때다. 
하나님이 그들의 내면을 정화하시는 중이다. 
또 지금은 위로와 격려를 베풀어야 할 때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언제까지고 이 고통을 견디기 위해, 그들이 바라는 것이 그것일 수 있다.
그때까지는 어떤 처방도 적당하지 못하다.”(305쪽)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토마스 아 켐피스도 “환난을 견디지 않고 다른 것을 구한다면 너는 속고 있다. 
이 필멸의 삶은 온통 불행으로 가득하며 사방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일수록 십자가가 더 무거워질 때가 많다.”(306쪽)

저자는 “지금 역경의 때를 지나고 있거든 혼자가 아님을 알라. 
하나님은 수많은 성도를 대하신 것처럼 당신도 똑같이 대하고 계신다. 
그 사실에서 힘을 얻으라”며 다독인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교회는 혀에 재갈을 물리고 고요함 속에 들어가야 할 때다. 

우리의 삶을 과도한 소음과 분주함으로 채우게 한다면 하나님의 음성이 뚫고 들어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프랑수아 페넬롱의 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하나님은 말씀을 그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바깥세상의 소음과 내면의 감정의 소음 때문에 듣지 못할 뿐이다. 
그분의 형언할 수 없는 음성을 아주 고요한 영혼 전체로 들으려면 세상과 자신의 소음을 모두 가라앉혀야 한다. 
귀 기울여야 한다.
 이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은 다른 모든 소리를 더는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들리기 때문이다.”(188쪽)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의 조상’이 아니었던 것처럼 고전적 영성가들 역시 처음부터 높은 신앙의 소유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다만 성장하기 원했고 성숙을 향한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넘어 지금 이 땅에서 날마다 섬기며 영향을 미치기를 목표로 삼았다. 
책의 전반부에 배치된 다섯 가지 영적 훈련은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경건한 독서, 살아 있는 모범 본받기, 덕 기르기, 일찍 일어나기, 반추하는 삶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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