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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가 살던 시대의 하나님은 공포 그 자체였다.


교회 강단에서는 구원에 대한 강론보다 정죄가 난무했고, 신자들의 기도는 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요구하는 간청들이 대부분이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루터는 하나님을 심판자요 파멸자로만 알았고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었다.
하지만 성경을 깊이 읽어가면서 그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었고 인간의 공로와 상관없이 의롭다 칭하셨다는 사실이었다.
루터의 하나님 인식 전환은 종교개혁의 불꽃을 당기는 계기가 됐다.


스페인 학자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의 역작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는 참 하나님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우리 안에 형성돼 있는 잘못된 하나님 인식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제대로 알자고 역설한다.
거짓 하나님 개념 중 가장 폭넓게 퍼져있는 인식은 공포의 하나님이다.


이는 소위 ‘공포의 목회’를 통해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들은 죄를 예방하기 위해 공포를 이용했지만 사람들은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저자는 공포의 목회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는 단 하나의 죄도 놓치지 않고 징벌하는 엄격한 심판관으로서 하나님의 모습이라 지적한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는 괴물이 아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며 빛이라고 정의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이름이며, 그의 존재와 행위 그 자체다.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고 구약성경 호세아서(11:4, 8∼9)에서 하나님은 자식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분으로 묘사된다.


이사야 선지자도 어머니의 따뜻함을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시인들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큰 바위, 성과 요새로 비유했다.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기에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시 27).


예수님의 모든 비유엔 사랑의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은 공포를 이긴다.


사랑의 하나님인가. 공포의 하나님인가.


저자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며 하나를 택하라고 도전한다.
하나님은 또한 연대(連帶)의 하나님이다.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개인적 경험 없이는 참된 믿음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기만의 하나님으로 과도하게 집중하는 태도는 비판 받아야 한다.


개인의 신앙과 삶에 집중하며 이를 기독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신앙은 구조적 악과 세계의 악에 대해 무지하도록 만든다.


노동자들의 불법 해고와 환경 파괴, 식량과 영양 부족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참혹한 결과와 난민 발생 등에 대해서는 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개인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부르주아적 기독교’로 부르면서 ‘나 중심주의(I-centrism)’의 침투로 인한 결과로 분석한다.


개인주의적 기독교는 너무 쉽게 뉴에이지운동이나 네오(Neo) 불교와 유사한 영성주의자들과 연대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신앙을 인간 내면의 문제로만 여기는 극단적 형태인 것이다.


저자는 성경적 하나님이 사회적 관심에 대해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죄와 구원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민족 공동체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구약 예언서 전반에 나타나는 외국인과 고아, 과부에 대한 돌봄 메시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해방과 치유, 회복과 관련이 깊다.


저자는 “연대는 예수의 하나님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이름 중 하나로, 하나님은 인간과 연대하는 신”이라고 밝힌다.


책에서는 간섭의 하나님에서 의지의 하나님, 희생의 하나님에서 생명의 하나님, 강제의 하나님에서 자유의 하나님, 멀리 있는 하나님에서 가까이 있는 하나님, 폭력의 하나님에서 평화의 하나님, 홀로 있는 하나님에서 함께 있는 하나님 등의 주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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