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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원 출신 '딸'을 둔 윤용범 서기관이 지난 주말 경기도 안양 비산동의 한 뷔페에서 열린 돌

잔치에서 재롱을 부리다 잠든 '손자'를 안고 기뻐하고 있다.



'법의 날'(4월 25일)을 앞두고 '하나님의 공무원'으로 불리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소년과 윤용범(57) 서기관을 만났습니다. 


105명의 딸을 둔 '딸 바보 아빠 용바마'입니다. 


오바마의 리더십에서 별명을 따왔죠. 


그는 환갑도 안 된 나이에 출소한 무의탁 출원생 105명을 돕고 있습니다. 


윤 서기관은 전남 나주 정미소집에서 태어났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워져 서울로 올라와 마포구 염리동 속칭 '개바위'라는 산동네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스물일곱에 9급 공무원으로 출발, 31년간 외길을 걷고 있죠. 


충주소년원에서 첫발을 디뎠죠. 김성기 법무부 장관을 시작으로 현 김현웅 장관까지 29명을 모신 셈입니다. 



딸이 105명이나 되는 '수상한 아빠'


그는 소년보호 정책을 세우고, 비행예방센터를 관리하고, 소년원 출소자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요즘 ‘딸’과 ‘손주’ 보는 재미에 삽니다. 지난 17일에는 경기도 안양 비산동의 한 뷔페에서 출소한 딸 김혜은(가명·20)씨의 아들 돌잔치에 참석해 처음으로 할아버지 자리에 앉아 정을 듬뿍 전달했습니다. 


그는 ‘애가 애를 낳은 격’이라 애처로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당당한 엄마 역할을 하는 딸이 그저 고마웠다고 합니다. 

아기가 돌잡이로 마이크를 잡자 어린 나이의 엄마와 아빠는 싱글벙글이었고요. 하객들도 이들을 격려했습니다. 

23일에는 경기도 평택, 7월에는 경남 양산에 살고 있는 딸이 낳은 손주를 보러 갈 예정입니다. 

전북 전주에 사는 남민정(가명·24)씨는 지난해 11월 11일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시킨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당시 민정씨는 여섯 살짜리 아들을 키우면서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다음 달 28일에는 인천에 사는 비행 청소년 출신 딸 장진주(가명·23)씨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선다고 합니다.


윤 사무관은 죄를 저지른 소년원생을 만나 대화해보면 이들도 피해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요? 


그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들을 오래 지켜보면 착하고 예쁘지 않은 놈들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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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청소년은 가출이 아니라 탈출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변화되고 바뀐다는 것을 말입니다. 


“비행 청소년들은 가출이 아니라 탈출하는 겁니다. 가정에서 탈출했는데 다시 들어가라는 것은 죽으러 가라는 것과 같아요. 이들은 갈 데가 없어요. 


가정에서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갈 곳이 없어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쉽게 만나 마음을 나누고 정이 들다보니 아이도 갖게 됩니다. 


아버지 되는 남자아이는 알바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남자는 떠나고 여자만 남습니다. 혼자 아이를 낳고 분유값이 없어 애를 태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윤 서기관의 철학은 ‘믿기만 하자!’입니다.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만나주면 하루하루 자라고 변화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며 섬기자는 것이지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처럼 말이지요. 

그는 “‘너희들은 미래 사장들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면 미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가 비행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게 된 때는 군복무 시절입니다. 


학창시절 착하기만 했던 친한 친구가 비행 청소년의 길을 걷는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습니다. 


제대할 무렵 평생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비행 청소년을 돌보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1985년 곧바로 그 당시 보도직(현 보호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습니다. 



칠순에 700명 딸들과 갈비탕 먹는 게 꿈


사실 윤 서기관에게도 아픈 추억이 없지 않습니다.


 ‘한 발은 하나님 나라’에 ‘한 발은 세상’에 담그고 주님을 잃어버린 채 주(酒)와 함께하는 생활로 허송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채찍을 맞았지요. 


14년 전 갑자기 고개가 돌아가지 않고 목에는 주먹만한 종양이 생기는 등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몰렸었다고 합니다.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아픈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간다고 생각하니 눈물만 하염없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죠. 그런데 설교시간에 들었던 ‘히스기야의 기도’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한 번만 기회를 준다면 하나님 뜻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절박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의 힘으로 거짓말처럼 건강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날부로 술과 담배를 딱 끊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이 예배하고 전도하는 일이라 생각했죠. 

주일학교 교사로도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그는 현재 매주일 오후 서울소년원 학생들 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나눕니다. 


주중엔 돌아갈 곳 없는 아이들의 공간인 자립생활관을 쾌적하고 평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 직업훈련을 통한 취업·창업지원 과정인 예스센터를 기도로 건축하는 등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윤 서기관은 요즘 ‘해바라기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해바라기씨를 정성을 다해 심지 않고 꽃만 피우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첫 번째든지 열 번째든지 백 번째든지 해바라기를 피우기 위해 한 톨의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한 개의 해바라기꽃에 씨가 100개 들어있다고 하면 그 속에는 99개를 꽂아주었던 분들의 정성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저는 오늘도 누군가의 가슴속에 선물이 될 해바라기꽃 같은 아이의 가슴속에 100개 중 한 톨의 씨를 꽂습니다.”


윤 서기관의 교육철학은 ‘가르치려 말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이다’라는 의미죠. 그의 꿈은 14년 뒤 칠순잔치에 700명의 아이들과 함께 갈비탕을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CBS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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