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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경은 분명 술 말고,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힘들다. 

특히 회식문화에 익숙한 직장인들은 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012년 전국 16개 시·도에 거주하는 15세 이상 남녀 2066명을 대상으로 한 주류 소비·섭취 실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3명이 폭탄주를 마셨다.

젊을수록 폭탄주 선호도가 높았다. 

지난 19일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생명의교회(안일권 목사)에서 만난 김창섭(57) 전도사, 윤영호(57) 집사도 그랬다. 

젊었을 때부터 한두잔씩 마셨던 게 어느 순간부터 술보다 더 좋은 게 없을 정도로 자연스레 ‘술독’에 빠졌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이들의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우리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새해가 되면 금주, 금연 같은 ‘건강 계획’들을 가장 많이 세우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거듭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칫 ‘작심삼일’로 끝날 수 있는 새해 금주 결단을 촉구하는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주 한 병에 잡혔습니다”

전직 ‘대기업맨’ 김창섭 전도사가 처음 술을 마신 건 중학생 때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에게 술은 일종의 해방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집안 장손이었던 그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죠. 그러나 밤이 되면 마치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내듯 유흥가를 돌아다녔습니다. 

낮에는 정상적인 직장인으로, 밤에는 서울 강남의 유흥가나 도박장을 다니면서 세상적인 유혹에 취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술을 마셨다. 

기본이 소주 7∼8병. 

그러다 이상 증후를 느낀 게 1989년이다. 

“손이 떨려 글씨를 쓸 수 없더라고요. 결국 사표를 내고 1년을 쉬었습니다. 그럼에도 술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 안했습니다. 
물론 집안에서도 전혀 몰랐고요. 결혼도 안 하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잠깐 쉰다고들 생각했지요.”

컴퓨터 관련 회사에 다시 취직했다. 

두 얼굴을 한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몇 년을 일하고 또다시 회사를 그만뒀다. 

“심한 수전증 때문에 컴퓨터로 일하는 것에도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제야 술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게 됐지요. 입원과 외래진료 등을 수년간 반복했어요.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2000년 작은아버지 권유로 처음 교회에 나갔다. 

형식적으로 예배만 드렸을 뿐 술에 취해 사는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아버지의 권유로 2003년 강원도 횡성의 세계십자가선교회 치유원에 입소했다. 

복음으로 중독자들을 회복·치유하는 곳이다. 

선교회 설립자이자 시설장인 안일권 목사도 만났다.

선교회에 도착한 날 그가 처음 한 말이 “가게 가서 술 사마시는 거 허락해 달라”는 거였다. 

“그런데 안 목사님이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을 사주는 겁니다. 술 없으면 간다고 하니까, 저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겁니다. 그 소주 한 병에 제가 지금껏 잡혔습니다.”

3개월 영성 훈련을 받으면서 술은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갔고, 소망도 찾기 시작했다. 

서울 정릉의 십자가쉼터에서 봉사하는 동안 국민대 복지대학원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2011년에는 신학대학원도 졸업해 현재 선교회 교육전도사로 사역 중이다.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술 마시고 주정하고 사회에서 냉대받는 영혼들을 데려다 돌보는 삶 말입니다. 제가 그랬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들의 상황을 잘 알잖아요. 그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요. 지극히 낮은 자들을 위해 평생 헌신하려고 합니다.”

독신인 김 전도사는 바울처럼 그 길을 가겠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커피를 조금씩 나눠 마시는 그에게 짓궂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술 생각 안 나세요?” “커피 생각만 간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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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윤영호 집사는 오는 31일 생명의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는다.

 “우리 교회 장로나 집사들은 여느 교회 직분자들과 달라요. 대부분이 중독자 출신이지요. 언제든지 다른 중독자들을 돌보고, 기도하고, 칡즙을 내주고, 위로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는 한마디로 “중독자를 살리는 사역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중기 임대업을 하던 그는 IMF 때 힘들어지면서 술을 자주 마셨다. 

평소에도 즐겼지만 주량이 급속도로 늘었다. 

급기야 2001년 빚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리면서 3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소주를 12병씩 들이켰다. 

몸이 감당하지 못해 쓰러지면 병원에 입원하고 또 퇴원하면 술을 마셨다.

“두 달 술 마시고 20일 입원하던 게 어느 순간부턴 열흘 생활하고 한달을 치료받고 있더라고요. 당시 간수치가 정상인의 50배까지 치솟았고요.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죽음만 기다리던 때였지요. 입원했을 때 저를 전도하던 목사님이 혼수상태에 빠진 저를 선교회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2003년 그는 오른손 마비로 젓가락질을 못했고, 혀는 굳어 말도 못했으며, 한쪽 귀는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당시 선교회에서 봉사하던 남궁재식(50) 집사가 그의 온갖 주정을 다 받아줬다. 
남궁 집사 역시 중독자였었다.

“제가 44기, 남궁 집사님이 43기로 선교회에 입소했지요. 처음엔 나를 이상한 데 데려다 놓았다며 얼마나 분노했는지 몰라요. 

그걸 남궁 집사님이 다 받아줬어요. 그러면서 ‘주기도문 다 외우면 보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오기로 주기도문을 외웠어요. 그랬더니 ‘사도신경 다 외우면 보내줄게요’ 하데요. 어느새 말문이 트인 저를 발견했습니다.”

하루 네 번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벙어리가 되어도’란 찬양을 부르는 중에 그는 깨지고 엎어졌다. 
예배실에 걸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말씀대로 부르짖기 시작했다. 

3개월3일 만에 그는 걸어서 선교회를 나왔다.

“저를 선교회에 보내놓고 아내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더라고요. 그렇게 우리 가정은 회복됐고, 저는 주일성수만 할 수 있다면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포클레인 지게차 등 중장비 자격증을 다 땄어요. 그새 1억원 빚도 다 갚았고요. 자동차 할부금도 끝냈어요. 안정된 직장도 갖게 됐지요.”

윤 집사 얘기에 미소를 짓던 안 목사는 “교회 건축을 위해 1000만원 헌금하고, 어느 날 장롱 깊숙한 곳에서 금이 나왔다며 그것을 판 돈 230만원을 선교비로 보내왔다. 

수시로 떡 해오고, 과일 사오고. 선교회를 위해 뭐든 바칠 각오로 사시는 분”이라고 귀띔했다. 
아니나 다를까. 

윤 집사는 작년 8월 한국전력 일을 그만두고 생명의교회 건축 현장일을 돕고 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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