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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도 배우, 
드라마 같은 ‘1막’

1968년 TBC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니 배우로 산 세월이 46년.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에 전념한 시간 9년을 빼도 삶의 절반 이상을 연기자로 살아온 셈이다.

“68년 TV에 입문해 70년대 후반부터 시청자들이 반겨주고,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오빠’ 소리 듣는 사랑받는 연기자였어요. 
팬레터도 받았다니까요. 
배우로 화려하게 살면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병행했어요.”
기독교 영화에도 출연했다. 

82년 주기철 목사의 아들 주영진 전도사의 순교를 다룬 영화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시작으로 ‘새벽을 깨우리로다’ ‘좁은 길’ ‘무거운 새’ 등을 찍었다. 

90년 김혜자 정영숙 한인수 등 크리스천 배우들과 함께 탤런트 신우회를 조직했다. 

극단 예맥도 창립해 뮤지컬, 성극으로 복음 전하는 데도 힘썼다.

“연기자로 바쁜 만큼 ‘임동진 장로’로 교계 안팎에서 해야 할 사역이 참 많았어요. 그런데 교계 모임에 가면 ‘임 장로, 어제 드라마 감동이었어’란 말에 유독 솔깃해지더라고요. 
장로가 아니고 탤런트가 우선이더란 말이죠. ‘임 장로 교만해’란 소리가 무서워 체면 유지하려고 그렇게 바쁘게 다녔던 겁니다. 그게 싫어서 하나님이 저를 만지셨어요.”

2001년 8월 18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죽음 문턱에 섰다.
담당 의사는 “장례를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사흘 만에 깨어났다. 
정신 차리고 들은 소리가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한다”는 거였다. 

순간 “하나님 제게 왜 이러시는데요? 차라리 데려가시지”라고 감히 외쳤다.
“말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소리 지르며 기도할 수 있는 입만 열어주셨어요. 제 삶을 돌아봤죠. ‘그래 너 정말 열심히 사역했어. 그런데 정말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 동분서주했던 거니?’
마음 가운데 그런 깨달음이 왔을 때 어찌나 뜨끔하던지요. 
다 임 장로 체면 유지하느라 사역했던 겁니다.”

고(故) 김준곤 목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임 장로는 좋겠어. 레디고(준비하라), 액션(움직여라) 같은 (도전적인) 말을 항상 들어서.” 
바로 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어디든 붙잡고 일어서는 연습부터 했다. 
그리고 23일 만에 휠체어가 아닌 걸어서 퇴원했다.

목회자로, 
덤으로 산 ‘2막’

“살려주셨으니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2003년 루터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3년 동안 지각, 결석, 조퇴 한 번 안 했다.
“그렇게 하려니 많이 힘들었지요. 1년 과정을 겨우 마쳤을 무렵 아들에게 포기하고픈 심정을 전했어요. 

아들이 그러더군요. ‘아버지, 1등 하려고 입학했어요? 꼴찌를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니 오직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만 누리세요’라고요.” 
지금 그 아들은 캐나다에서 목회하고 있다.
준목 1년 동안 자택에서 교회 개척을 위한 기도 모임을 가졌다. 
네 가정이 함께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7일 열린문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개척하고 몇 년 지났을 때 새벽예배에 술 먹고 오는 젊은이가 있었어요. 
싫었죠. 술 취한 큰 목소리로 ‘아멘’ ‘할렐루야’ ‘하하’ 그러는데, 꼭 연기하는 거 같더라고요. 
예배를 마치자마자 젊은이와 마주치기 싫어 도망쳤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날까봐 계단으로 후다다닥 내려오는데, 1층 맨 끝 계단을 내딛는 순간 누가 위에서 ‘임동진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네?’ 하면서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넘어져 다리를 다쳤잖아요. 저요, 교회 처음 섬길 때 이런 다짐을 했거든요. ‘취객이 교회 들어오면 품겠습니다, 아픈 영혼을 품겠습니다, 같이 울겠습니다.’ 그런데 제 모습이 어때요? ‘이놈아, 너는 달리해보겠다고 했잖아. 
그들이 오면 끌어내는 교회가 아니라 품는 교회가 된다고 했잖아’라며 주님이 울고 계신 거 같았어요. 

다음날에도 그 친구가 술 마시고 예배에 참석했더라고요. 
깁스한 채 말씀을 마치고 그의 머리에 안수해줬어요. 

지금 성가대원으로 봉사해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지난 9년 동안 이 목사가 강조한 말씀이다. 

그래서일까. 
열린문교회 성도들은 품는 데 인색하지 않다. 
착하다. 
또 진실하고 신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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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공연문화 사역으로 ‘3막’

“견월망지(見月忘指),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느라 달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래요.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견월망지의 우를 범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 때문에,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저를 보면서 일부 성도들이 목사인 제게 집중해요. 
은퇴식도 안 한다고 하지.

속상한가봐요. 예수님의 은퇴식은 제자들 발 씻겨주시는 거였어요. 

교회는 예수님을 보고 배우고 그분처럼 사는 것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러니 은퇴식은 필요 없어요.  하나님만 보면 돼요. 

저는 이제 밖으로 나가서 그것만 외칠 겁니다.”

그는 신대원 전도사부터 담임목사까지 만 12년을 훈련받았다. 
그렇게 현장 목회 임기를 마치고 ‘인생 3막’을 준비 중이다. 

세 가지 ‘역할’을 감당한다. 

‘예수동산 가정 힐링사역’을 통해 이 시대 가정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기도한다. 
‘기독교 공연문화 사역’에 더욱 힘쓴다. 

크리스천 연기자들을 격려하고, 정기적으로 수준 높은 기독교 작품들을 무대에 올린다.
끝으로 ‘방송·드라마 사역’이다. 

새해 임 목사는 연기자로 재개한다. 
오는 2월 방송되는 KBS 대하사극 ‘징비록’에 출연한다. 

이를 위해 8일 문경에서 첫 촬영을 갖는다. 
연기자로 자연스럽게 돌아온 셈이다. 

빛처럼 태워지고 소금처럼 녹아지면서 세상의 필요 속에 그대로 스며드는 역할이다.
“솔직히 더 설레요.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이끌어가실지. 내 나이가 설렐 때는 아닌데 말입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임동진 주연의 모노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했다.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목소리의 높낮이며, 상황을 설명할 땐 몸짓과 말투에서 생동감마저 느껴졌다. 

역시 ‘연기자 임동진’은 건재했다.
그래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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