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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성자들이 꽃밭이 아니라 사막에서 영성을 얻을 수 있었다면 오늘의 사람은 어디이겠는가. 
바로 저 소설의 무대인 도시의 아스팔트 거리일 것이다.’

2010년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내 화제가 됐던 이어령(80·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전 문화부장관이 4년 만에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포이에마)를 최근 출간했다. 

그는 이 책 프롤로그에서 ‘아스팔트의 영성’을 얘기했다.

앞서 2007년 여름. ‘한국의 대표적 지성 이어령’이 세례를 받았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퉁 울리는 뉴스였다. 

대중은 평생 텍스트를 분석하며 산 학자, 계몽과 합리에 익숙한 지성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얘기한다는 것에 대해 ‘그 무엇이 있다’고 받아 들였다.

이어령이 복음을 받아들인 창(窓)은 딸 이민아 목사(1959~2012)였다. 

암과 싸우면서도 목회자로서 단 한 순간도 전도를 멈추지 않던 딸. 

그 딸은 죽는 순간까지 한국 지성의 상징 아버지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려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어령이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주 후 그의 사랑하는 외손자가 스물다섯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떴다.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다’는 말씀을 그 부녀는 수백, 수천 번 읽었을 것이다. 

그도 모자라 ‘너희 생각과 다른 하나님’은 아들 잃은 어미마저 거둬갔다. 
그 딸의 아비는 과연 영성을 향한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었을까.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연구소에서 이어령 이사장과 두 시간여의 대담을 가졌다. 
노학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침없었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평안함이 묵상하듯 배어나왔다. 


-책장에 일본 원서가 많습니다. 
선생님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독자는 잊지 못하죠. 
(독도에서 공연을 했던) 가수 이승철이 일본 공항에서 부당한 억류와 입국 거부를 당했다는 소식이 요 며칠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복음이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곳이 일본 땅인데 그 복음이 정착을 못했어요. 
복음이 자리 잡았으면 저렇게까지 편협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본은 관료주의가 우리보다 몇 십 배 강합니다. 
그게 없어지지 않는 한 근대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남방계, 북방계에서 쫓겨온 사람들로 이뤄진 국가입니다. 
그러니 ‘만들어진 깃발’이 필요했던 거죠. 
가짜 천황을 만들어 놓고 신도 의식으로 섬깁니다. 
50∼60년에 걸쳐 민주주의 국가, 글로벌 정책 등을 이뤄놓으면 뭐합니까. 
하루아침에 제국주의 국가로 돌아가잖아요.
천황은 인질로 잡힌 겁니다. 
가장 지존하지만 가장 천한 희생자이기도 합니다. 
개개인을 결속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우상이어도 관계없는 나라입니다. 
구중(九重)의 옷을 입어요. 다마네기(양파)처럼 까도 까도 나옵니다. 
우리와) 영원히 근접할 수 없는 간극이 있어요.
자기들도 어떤 짓을 할지 모르죠. 이런 의식이 일본을 지배해요. 
독일도 비슷해요. 
유대인 600만명을 죽인 것 보세요. 
두 나라가 과학과 교양, 지식이 뛰어나나 인간의 기본적인 문화를 컨트롤 못하는 야성이 있어요.”

-영성 부족이 공동체를 파괴하는군요.

“그렇죠. 과학과 합리주의는 신을 살해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혁명군이 누구를 먼저 죽이나요. 
신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신을 하나 세워 둔 ‘최고 존재의 제전’을 열지요. 
그 혁명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당초 불행한 사람과 빈곤한 사람들의 옹호자였죠. 
인권변호사였어요. 
그는 이상에 충실했고 목숨 내걸고 약자 편을 들었어요. 
정권을 잡았어도 셋방살이 했어요. 
그런 그가 극단적 열정에 사로잡혀 기독교를 부정하고 파괴합니다. 
나쁜 짓 안 하고 언제나 옳은 행동을 한 자신의 잣대로 보니 도처에 죽을 놈들이 널린 겁니다. 
끔찍한 처형이 이어지죠. 공포정치의 대명사잖아요.”

-이성이 갖는 한계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인간은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로베스피에르는 한 번에 대여섯 명을 놓고 처형했어요.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딱 하나가 모자랐습니다. 
바로 정(情), 사랑이 없었어요. 
정의로운 혁명이든 그렇지 않은 혁명이든 혁명은 생명과 사랑을 도외시합니다.
 6·25를 겪었고 혼란한 시절을 살아온 저는 너무 잘 압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죠.”

-‘사랑 없는 혁명은 안 된다’라는 메시지이신데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의 일맥 하는 흐름 같습니다. 
다섯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말테의 수기’ ‘탕자, 돌아오다’ ‘레미제라블’ ‘파이 이야기’ 가운데 말씀하신 부분은 ‘레미제라블’에서 뽑아낸 순례시고요.

“제가 어렸을 때 읽은 레미제라블의 한국판 제목이 ‘아, 무정(無情)’입니다. 
딱 드러내는 제목이죠. 한국사회는 레미제라블의 혁명과 자유, 평등을 가지고 지금도 사방에서 이념 싸움을 하고 있어요. 
산업화는 자유를, 민주화는 평등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두 세력이 도처에서 충돌해요. 
심지어 가족·세대 간에도요. 
한데 사랑의 영성을 가진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성서에서 그 답을 찾아요. 
사랑이죠. 그는 교회가 이를 완성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간의 오만이 이성을 이유로 우상을 만드는군요.

"기독교는 영성의 힘입니다. 
한데 잘못된 교주가 이성을 끌어와 자신을 신과 구별이 안 되게 흐려놔요. 
공산당도 그런 방식입니다. 그 교주의 종교나 공산당은 서로 혁명군이죠. 
사랑 없이 정의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사랑 없는 인간의 진보는 인간의 오만입니다. 
예수 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죽는 빵'을 먹으려 하지요. 
목사조차도 이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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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빵'이요.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영성이 생깁니까.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 사람들은 열광하죠. 
훗날 교회도 열광해요. 
지금의 설교자들도 예수가 행한 기적이라며 말이죠. 
오병이어는 그 비유가 아닙니다. 
구름 떼처럼 사람이 몰리고 그들에게 오병이어로 먹이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는 도망가요. 
군중이 지상의 왕이 돼라 하니 당연히 도망가죠. 
오병이어는 우리가 말하는 기적이 아닙니다. 
먹으면 죽는 빵을 먹으려는 이들을 질책하는 비유입니다. 
예수가 강에서 배를 타려 할 때도 '죽는 빵' 때문에 제자들이 걱정하죠. 
자신을 믿으면 영원히 살 텐데 먹어도 배고픈 빵만 찾으니 그렇죠. 
제가 50년을 문학비평한 사람입니다. 
비유법을 전공했어요. 그 텍스트를 이해 못할까요."

-영의 양식을 먹고 아버지를 믿으라는 거군요.

"신자가 하나님 말씀으로 살지 빵으로 삽니까. 
무엇보다 제대로 믿어봐야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죠. 
니체(19세기 독일 철학자)가 '신은 죽었다'고 했는데… 바른 번역은 아니지만, 그에게는 절실한 얘기였던 거죠. 
적어도 니체는 믿어봤으니까요. 
믿어야 영의 양식을 알고 영성을 알죠." 

-다섯 작품마다 심연에서 헤매는 인간이 있고 분석이 있습니다. 

"'파이 이야기'는 벵골호랑이와의 공생을 묘사했습니다. 
자기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소년 파이는 끝내 살려주죠. 
생명이니까요. 
주인공 파이가 탄 구명보트에서 가장 갈급한 건 갈증입니다. 
갈증을 축여주는 물은 우리 내면의 목마름, 영성의 세계를 상징하고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의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인거죠. 
227일간의 조난이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겠어요. '고맙다, 사랑한다, 
너 때문에 살았다'가 파이가 하고 싶은 말 아닐까요."

-따님은 생명이셨죠.

"죽음이 그 아이를 막지 못했어요. 
영생을 믿은 딸은 엄청난 통증에도 늘 의연했어요. 
죽기 전날까지도 기도하며 평안했어요. 
혼절해서 깨어나면 '아빠, 마귀가 어젯밤은 좀 심했어'라며 웃더군요.
내가 내 딸처럼 되지는 못하지만 딸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어요."

-크리스천이 되셨습니다. 
지식인의 책무가 남달리 들리지 않으실 텐데요.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지식인의 책무는 비판에 비판을 거듭하며 자기를 성찰하는 일입니다. 
빅토르 위고 등 책에 나오는 작가들은 말씀을 가지고 씨름했어요. 
그들이 작품을 통해 마지막으로 말하려는 건 사랑, 하나님의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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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문학평론가. 
1934년 충남 온양(현 아산) 태생.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 졸업. 
1956년 '우상과 파괴'로 평론계 등단.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 역임. 
이화여대 교수(1966∼89), 초대 문화부 장관,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연출, 새천년준비위 위원장, 2002년 월드컵조직위 식전문화 공동의장 역임. 저서 '저항의 문학'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등 다수. 
현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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