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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목회자 전덕기 목사 서거 100주기를 맞아 13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추모예식과 학술대회가 열렸다.


구한말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맞서 애국애족 정신을 일깨웠던 전덕기 목사.

고아출신으로 숯장사를 하던 전덕기 목사는 1892년 윌리엄 벤튼 스크랜턴 선교사와 만난 뒤 상동교회의 창립을 돕고 민중과 민족을 생각하는 목회자로 성장한다.

전덕기 목사는 이후 상동청년학원을 조직해 애국청년들을 양성했고, 1905년에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 파기운동에 앞장서는 등 국권회복운동에 힘썼다.

독립협회와 신민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던 전덕기 목사는 1911년 데라우찌 총독 암살 사건으로 알려진 105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뤘고, 그 휴우증으로 1914년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전덕기 목사 서거 100주년을 맞아 전 목사의 애국애족 신앙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가 13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열렸다.

전덕기목사추모사업회가 주최한 추모예식에는 상동교회 교인들을 비롯해 기독교대한감리회와 광복회, 국가보훈처, 한글학회, 우당기념사업회, 민족선양정기사업회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에서는 전덕기 목사 유가족이 국가보훈처와 광복회로부터 이달의 독립운동가 기념패와 축하패를 받았다. 

이어진 추모사에서는 일본 정부의 우경화 움직임을 규탄하며, 전덕기 목사의 구국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유철 광복회장은 "선생님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한 시대를 의롭게 사셨던 분이셨다"며, "일본의 우경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선생님의 구국정신을 이어갈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덕기 목사를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박종천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기독정신을 온전히 계승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전덕기 목사님 같은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을 다시한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철 목사(상동교회 담임, 전덕기목사추모사업회장)는 "한국교회가 사회를 보듬어 안고 눈물 흘리며 아파할 수 있는 진정한 교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덕기 목사님의 위대한 신앙심과 애국심이 우리 가슴에 흐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추모예식에 이어 진행된 학술대회에서는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돌봤던 민중목회자로서의 전덕기 목사의 모습도 회고됐다.

이덕주 교수(감신대 / 한국교회사)는 “전덕기는 민중에서 출발해 민족으로 매듭되는 한말 기독교 민족신앙인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전덕기는 신앙과 삶, 설교와 실천이 하나가 되는 언행일치의 본을 보여줬다”며, “이러한 모습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일반 세속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윤경로 교수(한성대 명예교수)는 "그 자신이 가난한 빈민출신으로 그의 목회 활동 역시 헐벗고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을에게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한 민중목회자였다"며, "평생을 이웃사랑의 기독교 정신을 구현한 남다른 신앙심이 구국운동과 애국정신으로 승화되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전덕기 목사의 100주기 추모예배는 서거일인 23일에 맞춰 상동교회 예배당에서 거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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