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족 선교' 떠나는 故 영파 박용묵 목사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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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용묵 목사의 구령 열정은 7남매 슬하 50여명의 가족에게 영향을 끼쳤다. 영파선교회는 박 목사의 복음전파 정신을 가족 단위 선교로 승화시켰다. 영파선교회 회원들이 태국 치앙라이로 단기선교를 떠나기에 앞서 섬김과 봉사를 다짐하고 있다.

 

가족 단위로 단기 선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빠와 엄마, 자녀들이 손을 잡고 선교와 봉사활동을 떠난다.
이들은 선교지에서 활동 중인 선교사 가족과 만나 아빠 선교사와 엄마 선교사, 선교사 자녀들끼리 교감한다.
자녀들은 현지인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전혀 다른 세계와 문화를 경험한다.
1985년 설립된 영파선교회는 가족 단위 선교의 원조다. 영파(靈波)선교회는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초대 회장이자 서울 대길교회 원로목사를 지낸 고 박용묵(1918∼1991·작은 사진) 목사의 6남1녀 자녀들이 결성한 선교 모임이다. 영파는 박 목사의 호다.
7남매 가족 50여명은 매년 설 연휴 때면 함께 인도 선교를 떠났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인도의 젖줄인 갠지즈 강 유역의 작은 섬에도 교회를 세웠다.
지금까지 2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최근엔 가정 단위로 선교 현장을 찾는다.
6남1녀 중 여섯째인 샘병원 박상은(53) 의료원장은 “영파선교회의 특징은 가족 단위 선교”라며 “가정이 하나의 선교 단위가 될 수 있고 한 가정이 선교사 한 명을 파송할 수 있다”고 했다.
지역 교회에만 선교의 짐을 지울 게 아니라 가정이 선교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20%만 직간접적인 선교 활동에 참여하는 형편에서 가정 당 선교사를 파송하고 단기 선교에 참여하자는 얘기는 파격적일 수 있다.
박 의료원장은 그러나 “선교사들도 가정 단위로 파송돼 있기 때문에 가정 단위 선교도 해볼 만하다”며 “파송 단체나 교회들이 챙기지 못하는 측면을 가정이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 선교의 배경에는 박 목사의 가르침과 삶이 작용했다. 박 의료원장이 기억하는 선친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구령 열정의 소유자였다.
한 생명을 사랑했고 그 영혼을 위한 구원 열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박 목사는 버스와 택시, 기차안에서 수시로 전도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자녀들은 때로는 민망함에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말만 되돌아왔다고 한다. “저 사람이 지옥 가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내가 지금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 영혼은 누가 돌볼 것인가.”
그렇게 평생 복음을 전해 결신시킨 사람만 10만명이 넘는다. 박 목사는 주로 작은 교회를 위한 집회를 했다. 한강 백사장 집회 등 대형 집회에서도 말씀을 전했다.
1000회의 부흥회를 인도했지만 작은 교회 요청이라면 미루는 법이 없었다. 80년대 후반 당뇨 합병증 등 병마와 싸우면서도 “나는 회(부흥회)를 먹어야 산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집회를 인도한 것은 그가 얼마나 영혼 구원에 생명을 걸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박 원장도 아버지 집회에 대해 기억이 많다. 그중엔 치유의 기적도 목격했다.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병자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리지 않으셨지요.”
의학도였던 박 원장에게 부흥회 기적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체가 지음을 받았는데 그 생명체 안에 오리지널 말씀이 들어갔을 때 유전자 변화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박 원장은 “아버지에 비해 자녀들은 얼마나 전도했는지 반성하게 된다”며 “아버지의 신앙 유산을 받은 것도 은혜지만 진정한 축복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영파선교회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선친의 구령 열정을 이어받아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못다 이룬 세계 선교에 힘쓰기 위함이었다.
박 목사는 단순한 삶을 살았다.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노동의 소중함과 청빈의 삶을 살았다. 설교 원고도 편지지 뒷면이나 봉투를 뜯어 여백에 사용할 정도였다.
박 목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는 것이 삶의 신조였다. 양보하고 지는 삶을 살라고 당부했다.
하나님의 뜻이 서려 있다면 결국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박 목사의 삶은 7남매와 슬하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장남 박재천(연흥교회·가정효아카데미 대표) 목사는 선친이 강조했던 효 사상을 이어받았고, 차남 박재형 서울의대 교수와 5남 박 원장은 의사로, 6남 박상진 장신대 교수는 신학교에서, 장녀 성순(장충교회 권사)씨와 3남 재열(하나투어 전무이사)씨, 4남 재섭(서대문교회 전도사)씨도 각각 삶의 현장에서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다.
내달 9일 오후 5시엔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박용묵 목사 20주기 추모 예배와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책은 박상은 원장이 선친의 삶과 목회를 정리한 것이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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