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느헤미야코리아 다음학교 5층에 마련된 다락방 도서관 ‘민아의 방’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아내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둘러보고 있다. 작은 사진은 암 투병 당시 이민아 목사의 모습. 느헤미야코리아 다음학교 제공
평생 바빠서 딸에게 ‘굿나잇 키스’ 한 번 못해준 게 미안했던 아버지.
그 애절한 마음이 살아생전 딸이 그토록 사랑하던 ‘땅끝의 아이들’을 위한 작은 공간이 되어 돌아왔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하늘나라로 떠난 딸 이민아(1959∼2012) 목사를 위해 쓴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열림원)의 인세를 기부해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느헤미야코리아 다음학교(대표 전죤) 5층에 작은 다락방 도서관 ‘민아의 방’이 생긴 것이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로 이전한 다음학교는 20일 이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 전 장관과 아내 강인숙 영인문학관장도 행사에 참석한 뒤 딸의 이름을 붙인 작은 방을 둘러봤다.
자작나무 목재로 아담하게 꾸민 다락방에는 책장과 책상에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골방까지 한편에 있었다.
강 관장은 “이쁘다. 여기에 우리 민아 사진 걸어놓을 수 있을까.
민아 쓰던 물건들, 십자가랑 보던 책들도 여기에 가져다 놓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살짝 목이 메었다.
이 전 장관은 비어 있는 책장을 보면서 “어떤 책이든, 아이들이 보면 좋을 책들로 다 채워줄게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딸이 만날 골방에 들어가서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천장까지 있는 다락방이 생겨서 우리 딸이 좋아하겠네”라고 했다.
가슴에 묻어만 뒀던 자식의 기억을 꺼내놓을 공간이 처음 생긴 것이다.
이 목사의 대학 동창이자 오랜 친구인 방혜성 태평양학원 이사가 이 전 장관 부부에게 학교를 소개했다.
방 이사는 “민아 목사가 임종 때까지 함께 했던 조이어스교회 박종렬 목사님과 의논하면서 그가 다 이루지 못한 탈북 학생들을 위한 비전을 여기에 심어주자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1년 ‘땅끝의 아이들’(시냇가에심은나무)이라는 간증집을 남겼던 이 목사는 평생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땅끝의 아이들’이라 부르며 가슴에 품는 사역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 전 장관은 축사를 통해 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전했다.
그는 “어린 딸이 ‘굿나잇’ 인사를 하러 오면 늘 바빠서 뒤돌아보지 않은 채 손 흔들며 ‘잘 자라’고 인사한 게 후회가 됐다”며 “그래서 하나님이 시간을 단 30초라도 그때로 돌려주면 못했던 굿나잇 키스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민아씨 간증이야기 "땅 끝의 아이들".
이 전 장관은 “오늘 와서 보니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가야 내가 못한 것을 풀 수 있는 30초가 기다린다는 걸 알았다”며 “끝없이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다음’이 있고, 바로 그 ‘다음’에 사랑과 기쁨 충만한 날이 올 것임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행사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난 그는 ‘크리스천의 미션’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생 딸이 하고자 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달랐어요.
내가 딸의 소원대로 크리스천의 길을 걸어가게 되면서, 살아 있었으면 딸이 했을 일을 일부나마 대신하게 된 게 기뻐요. 크리스천의 미션이란 건 이렇게 세상을 떠나도 계속 이어져 내려가는구나.
한 톨의 씨앗이 땅에 떨어졌지만 죽지 않고 더 많은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게 단순한 비유가 아니구나.
이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실감했어요.”
학생들은 벌써부터 자기만의 아지트라도 되는 것처럼 ‘민아의 방’을 좋아하고 찾는다.
이 전 장관은 “탈북자들이 어둠의 기억을 버리고 밝은 이 공간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니 문자 그대로 ‘다음의 한국 풍경’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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