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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었다. 
대학 교육계에서만 40년 넘게 몸담은 터라 소위 ‘잘나가는’ 지인들도 많다. 

주위로부터 존경받으면서 여생을 마무리할 만도 한데, 이현청(66) 한양대 석좌교수의 선택은 뭇사람들의 예상을 비껴갔다. 

지난 30일 서울 광진구 능동로의 한 주상복합건물 2층. 

‘은혜나눔교회’ 간판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이 교수는 먼저 다가와 밝은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마치 주일에 교회에 들어서는 성도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목회자를 보는 것 같았다.

“목사는 아니고, 장로입니다. 하지만 이 교회를 설립했고, 성도들을 돌보고 주일 설교를 맡기도 하니까 ‘교회 사역자’라고 해야 할까요.”

이 교수의 경력은 화려하다. 상명대 호남대 등 대학 2곳 총장에 이어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에는 국제인명센터의 ‘세계 100대 교육자’와 ‘우수지식인 2000인’에 각각 등재됐을 정도로 대학 교육 분야의 대표적인 석학이다. 

그가 지난해 9월 서울 한복판에 개척교회를 설립한 계기는 특별하다. 

“2011년 말이었어요. 그해 대학 총장과 대학총장협회 회장 직을 모두 내려놓으면서 마지막 남은 ‘숙제’가 생각나더라고요.” 

숙제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1990년대 중반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와 컬럼비아 바이블칼리지 등에서 신학에 입문할 기회가 있었다. 

3년 전에는 총신대신대원에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입학을 포기했다.

“신학을 하는 것이 옳은지, 주어진 환경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를 두고 하나님께 계속 물었습니다.” 

결국 그는 부인인 김명희(62) 백석대 교수와 함께 2012년 5월 로뎀가정교회를 개척했다.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2년여 만인 지난해 9월 초 지금의 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저와 아내 단 둘이서 주일과 수요일 예배를 드렸어요. 
그 뒤로 한 사람, 한 사람씩 늘더니 지금 12명 정도 됩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오랜 기간 동안 “총장님” “회장님”으로 불렸던 그는 개척교회 사역자로 변신하면서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매일매일 내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더라고요. 예전의 직함이 사라지자마자 광야에 던져진 것 같았어요. 

비서도 없어졌지, 차도 안 나오지, (나에 대한) 뉴스도 없어지니까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아직까지 ‘인간 이현청은 죽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라고 매일 되뇌고 있어요.”

이 교수는 교회 사역뿐만 아니라 아내인 김 교수의 상담 사역도 돕고 있다. 

기독교상담 전문가인 김 교수는 교회부설기관인 ‘건강가정상담센터’를 맡고 있다. 
지역주민 무료 상담을 비롯해 목회자 및 예비목회자, 신학생 및 성도들을 대상으로 상담 활동을 펼친다. 

‘잘 살다가 잘 떠나는(죽음을 맞이하는)’ 의미의 ‘웰리빙-웰리빙(well living-well leaving)’ 치유·상담 프로그램도 운용 중이다.

새해를 맞이한 이 교수의 소망은 소박했다. 

“나의 속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온전히 바뀌는 겁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길이라면 순종하되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기도해주세요.”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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