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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해 붓을 들다

구약성경 한글서예 작업의 여정은 그의 인생 자체다. 
박 작가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의 나이 일곱 살 때 아버지의 방랑벽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했다. 
어느 날 교회 새벽종 소리가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날 그는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에 다니며 친구로부터 성경책을 한 권을 선물 받았다. 1주일 만에 신·구약 66권을 다 읽었다. 

“성경을 읽고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바로 여기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이 사랑에 보답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 즈음 ‘최후의 심판’ 등을 그린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지만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안타까웠어요. 
내가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자고 생각했죠. 
그 방법이 서예로 성경을 쓰는 것이었고요.”

그는 국전지에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창세기를 쓰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썼고 학교에 가서도 서예실에서 썼다. 
박 작가는 할아버지로부터 서예를 배웠다. 

아기 시절부터 붓과 먹이 그의 장난감이었다. 
커서는 서예가협회장을 지낸 김충현(1921∼2006) 선생을 사사했다.



◇내 생명 끝날 때까지

성경 서예 작업을 하면서 두 차례 큰 위기를 겪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는 부산 도자기 공장에서 일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할머니까지 위암으로 투병 중이어서 진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18세 때인 82년 어느 날, 도자기를 굽다가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흙에서 발생하는 흙먼지가 폐에 무리를 줬다. 
병원에선 폐결핵이라며 1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다. 첫 번째 위기였다.

‘호세아’를 쓰고 있던 그는 ‘호세아’ 서예 작업이라도 마치겠다고 결심하고, 경남 밀양의 한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며 서예를 계속했다. 

국전지 한 장을 쓰는 데는 보통 3시간이 걸린다.

 작품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많게는 10장을 써야 할 때도 있다. 
길게는 하루 18시간 동안 성경을 쓰기도 했다. 
긴 시간 작업하다 팔이 마비되면 붓을 더 꽉 잡았다. 

하루는 붓을 너무 꽉 잡았는지 대나무 붓대가 깨졌다. 
깨진 대나무가 손바닥 살을 파고들어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간 김에 폐 사진도 찍어봤는데, 뜻밖에도 의사는 아무 이상도 없다고 진단했다.
더욱 열심히 성경 서예에 매달렸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는 새벽과 밤 시간에 성경을 썼다. 
군에 입대해서도 성경을 계속 썼다. 

그는 다행히 상황실에서 차트를 쓰는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에 입학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서예학원을 운영할 때도 쉬지 않았다. 



◇다시 붓을 들다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93년 12월 11일 대전 대덕연구단지 연구실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났다. 

연구원 한 명이 사망하고 연구실은 전소했다. 

박 작가는 이 사고로 창세기부터 아모스까지 쓴 모든 작품을 잃었다. 

이 연구실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서예작품을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을 때도 그랬어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절망감에 빠졌죠.”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이듬해 1월부터 다시 붓을 들어 창세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때 용기를 준 이가 성경통독원 조병호 원장이었다. 

조 원장은 박 작가가 섬겼던 서울 성지교회 교육목사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주인을 위해 삽도 없이 손으로 땅을 파는 종의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 종을 바라보는 주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마음이 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이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했지요.”

성경서예를 새로 시작한 뒤 많은 일이 일어났다. 
97년부터 감신대 교수와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쳤다. 

2000년 서예 월드컵으로 불리는 중국 국제서법대전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대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특선에도 올랐다.

강원도 화천 부촌교회(정종태 목사), 전북 김제 월성교회(김장섭 목사) 등 전국 미자립교회 32곳과 국제선교선 '로고스호프'에 '말씀의 벽'도 세웠다. 

이 작품은 한쪽 벽면 전체에 한글서예로 성경구절을 써놓은 것이다. 
다음 달 초에는 34번째로 경기도 포천 화산교회에도 '말씀의 벽'을 세운다.



◇다시 또 7년, 새로운 시작

성경 서예에 들어간 돈은 10억원 가까이 된다. 
2011년 경기도 용인의 7억원대 아파트를 팔았다. 

오피스텔로 들어갔는데 지난 3월 보증금을 다 까먹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더라고 그는 간증했다. 

"강남기쁨병원 강윤식 원장님의 부탁을 받고 작품을 썼는데, 사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집이 없다고 했더니 서울 대치동 빌라를 한 채 주시더라고요." 

실제 거래금액이 '0'원인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박씨는 이제 신약성경 쓰기에 도전한다. 

앞으로 7년, 7000만원가량이 소요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조 원장, 김명용 장신대 총장, 김근상 성공회 대주교 등 그를 아는 이들이 후원자로 나섰다. 

27일 서울 군자동 문화공간 '쇼앤톡'에서 후원 모임이 열린다. 

각 기관이나 단체, 교회, 개인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등 신약성경의 한 권씩 한글서예 작업을 후원토록 하는 후원자 발굴에도 나선다. 

7년 후 신약성경 한글서예도 모두 완료한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대뜸 통일을 이야기했다.

 "휴전선 근처에 모든 벽을 성경 말씀으로 채운 교회를 세우고 싶어요.  통일을 기도하면서요." 
(02-3477-3288)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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