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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률 장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싱어송라이터가 됐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태어나지 않았을 테죠. 어떻게 작곡하게 됐냐고요. 한 마디로 절실하고 절절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10대 청소년들처럼 그의 학창시절 꿈도 가수였다. 


그의 우상은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탄 노래하는 음유시인 밥 딜런이었다. 


전남대 경영학과 4학년이던 1981년 겨울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57)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이야기다. 


이 노래는 18일 오전 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종북시비에 휘말려 중단된 지 9년 만에 제창된다.


그는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 


중학교 2학년 때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이모의 전도로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기장) 광주계림교회에 다닌 게 전부다. 


영혼을 울리는 교회 종소리와 풍금소리가 최고의 음악선생이었다.


광주일고에 입학하자 그의 부친은 아들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길 원했다.

 

하지만 재수까지 한 처지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서울 유학에 나설 형편이 못 돼 전남대 경영학과를 택했다.


“노래 한 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였지요. 다시 음대에 가고 싶어 몰래 성악레슨을 받았죠. 그런데 78년 대학 1학년 때 전남 강진군청 공무원이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고학생 신세가 됐습니다.”


음대는 포기하는 대신 음악동아리 회원들과 78년 전일방송(VOC)이 주최한 가요제에 나갔다. 황순원의 소설에서 따온 ‘소나기'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79년엔 MBC대학가요제에 나가서 ‘영랑과 강진'으로 은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겪고 난 뒤 생각을 고쳐먹었다.


“석양이 유난히 아름답던 그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군인이 내려친 곤봉에 머리를 맞은 청년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치솟는데 심장이 멎을 것 같았어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살려주세요’ 기도를 하며 뒤돌아 도망갔지요. 더 노래를 못하겠더라고요.”


노래극 ‘넋풀이’(영혼 결혼식)가 그런 그를 바꿔 놨다. 친구였던 두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을 그린 노래극이었다. 


주인공은 78년 고인이 된 박기순씨와 80년 5월 27일 5·18민주화운동 최후항쟁 과정 중 전남도청에서 목숨을 잃은 윤상원씨였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신앙이 김 처장의 가슴을 울렸다. 언제나 낮은 곳에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말이다. 


그렇게 ‘임을 위한 행진곡’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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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36년전 겨울 1박2일만에 작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원본.



“소설가 황석영 선생님이 이 노래극을 제안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고 용기가 용솟음치더군요. 곧바로 감사기도를 드리고 연습장에 악보를 그렸습니다.”


23세 청년이 만든 노래는 수천개 카세트테이프로 복사돼 전국 교회와 시민단체를 통해 퍼져나갔다. 손에 손으로 이어진 테이프는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며 지금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끈 산증인으로 부활했다.


“이 노래를 다시 제창하게 되니 10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임’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분들입니다. 레미제라블처럼 뮤지컬과 교향곡으로 만들 작정입니다.”

 김 처장은 “제가 이 노래 때문에 ‘유명인사’가 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이 땅을 지킨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과 그들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면 그뿐”이라고도 했다.


진보 성향의 기장 교단 소속 교회에서 신앙 기반을 쌓은 김 처장은 84년 서울로 올라와 서대문구 연희로 은진교회를 다니다 95년부터 경기도 평촌 새중앙교회(황덕영 목사)를 장로로 섬기고 있다. 


새중앙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대신) 소속으로 보수성향이지만, 박중식 원로목사의 메시지가 좋아서 정착하게 됐다고 했다.


오는 21일 주일에는 새중앙교회에서 헌금 찬양 전 CCM 앨범인 ‘김종률의 CCM VOL 1 십자가 그 사랑이’(CCA) 사전발표회를 갖는다.


“신앙심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습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김 처장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찬양사역자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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