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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말씀 900절을 암송하는 김성진군(오른쪽)이 11일 경북 구미 자택에서 가족들과 말씀암송 예배를 드리고 있다. 김군 가족은 성경 각 절을 손가락으로 세어가면서 말씀을 암송한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성경말씀 900절을 줄줄 외운다. 


900절이면 잠언 31장(915절) 전체 분량과 맞먹는다. 


또박또박 쉬지 않고 외우면 2시간 20분이 걸린다. 


경북 구미성은교회(문종수 목사)에 출석하는 김성진(13)군 이야기다.



900절 암송 비결, 

조금씩 꾸준하게 


성진이가 말씀암송을 시작한 것은 4세부터다. 2009년 교회 부흥회에 한창수 대구엠마오교회 목사가 강사로 왔는데, 이 자리에 엄마 손영화(43) 집사가 참석했다. 


초신자였던 엄마는 이날 말씀암송 세계에 눈을 떴고 어린 아들이 한글도 떼기 전에 앉혀놓고 요한복음 1장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주일예배에 자녀를 참석시키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안일한 생각을 뛰어 넘은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니 100절 암송을 목표로 했죠. 벽에 말씀을 붙여놓고 외우다가 막힐 때마다 한창수 목사님과 조명숙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죠. 어떻게 하면 암송이 되냐고.”


11일 경북 구미 송동로 자택에서 만난 손 집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엄마였다.


말씀암송을 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진이가 성경암송 때 본 글자를 떠올리며 ‘고구마’ ‘바나나’ 등 단어를 한 번에 읽기 시작한 것이다. 


한지가 먹물을 빨아들이듯 속도가 빨랐다. 


학습지는 손도 안 댔다. 손 집사는 “암송을 시켜보니까 학습지로 한글을 익힌 다른 아이들보다 확실히 빨랐다”고 회고했다.


말씀암송은 꿀벌이 먼 거리를 날아가는 것과 원리가 비슷하다. 


꿀벌은 단번에 1㎞를 날아가는 게 아니다. 


처음엔 300m를 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600m, 다시 1㎞를 날아가는 원리로 도달 거리를 넓힌다.

말씀암송도 하루에 1절씩 암송범위를 점차 넓히는 개념이다.


성진이는 외운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요일별로 200~300절씩 돌아가며 외운다. 


외운 말씀은 녹음해서 다시 듣고 성경말씀 쓰기노트도 사용한다. 


여운학 장로가 운영하는 ‘303비전성경암송학교’에 빠짐없이 참석해 말씀암송을 하는 또래들과 교류도 했다.


성진군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엄마가 요리를 준비할 때 식탁에 앉아서 100~200절씩 외운다”면서 “저녁 9시에 말씀암송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도 50~100절을 외운다”고 설명했다.



신앙전수의 핵심통로는 

교회가 아닌 가정


말씀암송 예배는 간단하다. 


찬송을 몇 곡 부르고 엄마아빠와 함께 말씀암송을 하는 것이다. 

모입장에선 설교 부담이 없다. 


기도시간에 서로 기도제목을 나눈다. 


부모와 자식 간 대화의 문도 열린다. 

부모는 자녀를 안고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준다. 


신앙전수는 보통 가정, 학교, 교회라는 3대 축을 통해 전수된다. 

이 중 핵심축인 가정에서 암송 예배라는 방법으로 자녀에게 말씀을 먹인 것이다.

성진이는 그렇게 7세 때 200절을 외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300절을, 4학년 때 763절을 돌파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 영진(9)이도 300절을 외운다. 영진이의 암송 진도는 성진이보다 1년 빠르다. 


휴대폰을 열면 언제든지 성경을 볼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이지만 아날로그식 방법으로 자녀의 뇌리에 말씀을 새겨 넣은 것이다.


아빠 김용인(47) 집사는 “2010년부터 말씀암송 예배를 드렸는데 성진이가 고린도전서 전체를 외우는 모습에 무척 신기했다”면서 “어느 순간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성경에 있는 낱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휘력이 느는 속도가 확실히 빨랐다”고 말했다.


성진군은 “말씀을 외울 때 가장 어려웠던 게 요한계시록이었고 가장 쉬웠던 게 창세기 1장 1절이었다”면서 “1000절을 외우면 부모님이 전화와 문자만 받을 수 있는 휴대폰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솔직히 900절을 넘을 때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엄마랑 꾸준히 암송을 하니 할 만했다”면서 “주일날 목사님 설교말씀을 들으면 외웠던 말씀이 많이 나온다”고 웃었다.



외운 말씀, 자녀 가슴

까지 녹아내렸으면


꾸준한 암송의 결과일까. 

성진이는 특별한 과외 없이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이다. 좋아하는 과목은 역사다. 


부모의 바람은 죄악이 창궐하는 시대에 두 아들이 암송한 말씀을 묵상하며 삶 속에서 실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손 집사는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죄의 유혹이 있고 거기에 걸려 자주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두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너에게 뭐라고 하느냐’고 묻는다”면서 “성진이는 요즘 사춘기에 들어섰지만 크게 반항하지 않고 자신이 암송한 말씀에 순종한다. 


이게 말씀 암송의 유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김 집사도 “말씀암송은 말씀이신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행위”라면서 “머리로 암송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까지 녹아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진이를 교육시키며 ‘말씀암송은 암기력이 왕성한 어린 시절부터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손 집사는 교회 내에 자발적 말씀암송 모임을 만들었다.

 

엄마들을 찾아다니며 “학습지에 매달리지 말고 말씀을 암송하면 아이가 굉장히 똑똑해진다”고 설득했다. 


60여명의 어린이들이 말씀암송에 동참하고 있는데, 주일 예배 후 교육관에 모여 말씀을 암송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충성자’라는 자녀 모임도 만들어 새벽기도회와 금요철야예배, 오후예배에 빠짐없이 참석시킨다. 

부모들은 매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말씀암송 녹음파일을 올린다.



말씀암송·성령체험 

반드시 조화 이뤄야


문종수 목사는 “말씀암송과 성령체험은 반드시 조화돼야 한다”면서 “자칫 잘못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지식적으로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금요철야에 참석해 기도를 하면서 암송한 말씀의 뜻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닫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기독 학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을 어떻게 전수시키는지 모른다. 

그 자신 부모세대로부터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학업은 학교에, 신앙교육은 교회에 모두 떠넘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자녀교육의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비게이션을 켜며 말씀암송이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자녀에게 장착해주는 작업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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