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볼틀.JPG

▲ 하경서 회장은 “가난한 엘살바도르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말했다.


40여년 전 미국으로 이민간 한 어머니가 생애 처음으로 재봉틀 앞에 앉았다. 

어머니는 혼자 두 아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의 아들은 10대 때부터 봉제일을 배웠다. 


아들은 이제 재봉사 수천 명을 거느린 ‘카이사(CAISA)’ 그룹의 회장이다. 


중남미 엘살바도르(El Salvador·구세주)에 본사를 둔 카이사는 좋은 일자리로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의 ‘구원자’가 되고 있다. 


‘제9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 참석차 내한한 하경서(53·산살바도르 유니온처치) 카이사그룹 회장을 최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나비넥타이를 맨 슈트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몸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열세 살 개구쟁이로 살려고 해요. 그동안 사업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했어요.” 


그의 어머니 김옥지(75)씨는 1973년 미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직후 아버지와 이혼했다. 


“어머니는 그때 한 달 동안 곡기를 끊고 누우셨죠. 한 달 만에 일어나면서 한 결심은 저와 동생을 어떻게든 먹여 살려야겠다는 것이었다고 해요. 어머니는 귀하게 자란 분이었어요. 그 이전엔 단 하루도 일을 해서 돈을 번 적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봉제공장으로 갔다. 공장은 봉제 건수에 따라 주급을 지급했다. 

어머니가 처음 받은 돈은 하루 1달러. 


첫 주 받은 주급은 7달러였다. 


“눈과 손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배우셨겠죠?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 밤낮 없이 일하셨어요. 9개월 뒤에는 1600달러를 주급으로 받으셨어요.” 


몇 해 뒤 어머니는 은행 대출을 받아 봉제공장을 차렸다. 


아들은 그 공장에 처음 간 날 크게 실망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줄 알았죠. 재봉틀 3대가 놓여 있었어요. 그나마 재봉사는 어머니 혼자였어요(웃음). 어머니는 한 시간마다 한 차례씩 재봉틀을 옮겨가며 일을 하고 계셨죠. 어머니는 쉬지 않으시고 기계는 쉬게 하면서….”


 아들은 일을 배웠다. 


학교 가는 시간을 빼곤 늘 공장에서 다림질을 하고, 봉제일을 하고, 재봉틀을 고쳤다. 

모자는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했다. 


신앙의 끈도 놓지 않았다. 


1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재봉사도 50명으로 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여름이 참 더워요. 전 러닝만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일 자전거를 타고 일감을 배달하러 다녔어요. 저를 좋게 본 한 봉제공장 오너가 제게 인수를 제안했어요. 그때 스물두 살이었죠.” 


그는 어머니 공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학비를 내고 86년 캘리포니아 주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봉제공장은 90년대 초반 4곳으로 늘어났다.


 “사업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다 가는 길로 가면 실패합니다. 패션계에서 빨간색이 유행하면 전 보색인 청록색 옷감을 준비해요. 다수가 아니라 소수인 쪽을 선택하면 위험의 확률도 높지만 반대로 성공의 가능성도 커지는 거죠.” 


하 회장이 한 가장 위험한 선택은 94년 사업 기반을 미국에서 엘살바도르로 옮긴 것이다.

“92년 캐나다 미국 멕시코가 북미자유무혁협정(NAFTA)을 체결한 이후 미 봉제 업계가 가격 경쟁의 위기에 처했어요. 


당시 내전이 끝난 지 2년도 안 된 엘살바도르를 선택했어요. 위험이 크면 이익도 크다(High Risk-High Profit)는 원리를 믿었어요. 


엘살바도르는 지금도 치안이 불안정해서 매월 900여명이 숨져요. 인구는 600여만명인데…. 1인당 GDP는 세계 100위권 밖이고.” 


현재 카이사그룹은 의류, 커피, 포장 등을 취급하는 공장 15곳을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등에 세웠다. 


종업원 5500여명이 일하고 있다. 


단칸 봉제공장이 어느새 거대한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는 연간 매출 3000억원의 1% 이상을 미혼모, 고아 등을 위해 기부한다. 

“저의 부(富)는 하나님이 제 작은 두 손에 부어주신 물이라고 생각해요. 이 물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다시 물을 담을 수가 없어요.” 


엘살바도르 국명의 뜻 ‘구세주’처럼 하 회장이 가장(家長) 수천 명에게 달린 수만 명의 생계를 책임진다. 


“10대 때 미혼모가 된 소녀들이 많아요. 미혼모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하고 일자리를 줘요. 가난한 엘살바도르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는 것이 하나님이 제게 준 사명이라고 여겨요.” 

엘살바도르 한인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2012년 한글학교 설립 기여 등의 공로로 대한민국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인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