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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답답할 때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학교 앞 좋은 형’이 되고 싶었어요. 인문학에 관심 있는 청춘이 즐겨 찾는 ‘인문학 성지’로도 만들고 싶었고요.” 


서울 노원구 석계로의 토스트 가게 ‘광운대학교 인문대학 수석 졸업자의 집(광인수집)’을 운영하는 이준형(27) 대표의 말이다. 


2007년 광운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지난해 2월 인문대 수석으로 졸업한 이 대표는 ‘가게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올해 3월 문을 연 이 대표의 토스트 가게는 독특한 상호 때문에 간판을 달자마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온라인상의 반응이 뜨거웠다.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용기 있는 시도’ ‘장사에 인문학을 접목한 생각이 기발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인문계 졸업자 구십 퍼센트가 논다’는 의미의 신조어 ‘인구론’의 대표적 사례라는 부정적 반응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오후 가게에서 만난 이 대표는 이런 반응에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는 가게 주력 메뉴인 ‘계치득’ 토스트를 구우며 대학생 손님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계치득은 ‘계란에 치즈 2장을 넣어 이득’의 줄임말이다. 


“인문학은 세상에 ‘물음표를 던지는 학문’이에요. 세상 조직, 체계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할 수 있게 돕는 학문이죠. 가게 이름을 이렇게 정한 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였어요. 인생은 정해진 답이 없는데 대학 졸업 후 꼭 대기업에 가야 하느냐고요. ‘수석 졸업자, 별거 없다’고도 말하고 싶었고(웃음).”


모태신앙인 이 대표는 대학 입학 후 선교단체인 한국기독학생회(IVF)에 들어가 리더로 활동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선교단체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YMCA에서 청소년 대상 성문화·학교폭력예방 강사로 활동한 것도 그중 하나다. 


‘치마만 입는 남자들의 모임’에 활동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특이한 이력도 있다. 


“전 학과 수업이 정말 즐거웠어요. 언어학자 놈 촘스키에 관한 강연을 듣다가 울었을 정도죠. 


주로 IVF 활동에 참여했는데 단체 특성상 책과 인문학을 중시해 수업과 과외활동이 크게 분리되지 않았어요. 여러 활동을 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죠.” 


다양한 활동 끝에 그가 찾은 자신의 적성은 ‘청소년 진로 상담’이었다. 


이 대표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졸업 전인 2013년 청소년 진로상담·컨설팅 업체에 인턴으로 취직했다. 


이곳에서 2년간 전국 초·중·고교를 돌며 학생들에게 진로 강의를 했다. 

일도 적성에 맞아 팀장까지 승진했다. 


회사 규모도 입사 전보다 배로 커졌고 월급도 많아졌지만 그의 불안감은 늘어만 갔다. 


회사 상사의 모습을 봤을 때 계속 일하며 행복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어서였다. 


결국 그는 기도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토스트 가게를 차렸다.


큰 돈을 벌자는 생각보단 정서·육체적으로 배고픈 청춘을 돕자는 목적에서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던 중 IVF 간사님을 만났는데 이분의 말이 큰 영향을 줬어요. 


‘기왕 장사할 거면 학교 근처에 가게를 내 청춘들에게 도움 주는 좋은 형이 됐으면 좋겠다.’


 저도 청소년·대학생을 좋아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영육간 굶주린 이를 먹이고 돕는 게 복음을 실천하는 삶이라 믿거든요.”


그래서인지 광인수집 토스트는 가격(2000~2500원)에 비해 양이 푸짐하다. 


가게에서는 현금 결제만 가능해 고객이 돈이 없으면 외상으로 받는데, 정작 외상장부는 없다.


 배고픈데 돈 없어서 못 먹는 학생을 위해 장부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돈이 될까 싶어 매출을 묻자 “먹고살 만큼은 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후배들에게 상담을 해주며 ‘좋은 형’이 되려는 노력도 계속 진행 중이다. 


그는 “21살 후배가 가게를 찾아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통곡해 가게 문 닫고 6시간 동안 같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며 “주로 진로·연애·신앙 상담 요청이 많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 뒤 마케팅 회사를 같이 하자거나 체인점을 내자는 제안도 적잖게 들어오지만 아직은 좀 더 내공을 쌓고 싶어 가게 운영을 지속할 계획이다.


이 대표의 향후 목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좋은 사람’을 찾다보니 예수님이 나오더라고요. 필사적으로 예수 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희망’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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