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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96·그림)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당대 철학자이자 국내 최고령 수필가이다. 


또 신학자나 목회자를 넘어서는 깊이를 가진 신앙인이기도 하다. 


14세에 심한 경기(驚氣)를 앓으면서 신유체험을 한 그는 그때부터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일본 유학시절 간절한 기도로 학병징집을 피해 기적 같이 살아남았다. 


1947년에 북한 공산당이 기독교도를 탄압하자 사선을 넘어 월남했다. 


청소년기에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성장했으며 한국전쟁과 민주화 투쟁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에 있는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요즘도 매일 산책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수영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그리고 원고지 40장 정도를 펜으로 꾹꾹 눌러 글을 쓴다. 


지난달 17일에는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프런티어)를 펴냈다. 


‘한국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 교수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100명의 사람에게 100개의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의 물음에 대한 제각각의 해답을 찾아 사는 것이 인생의 길입니다. 

소유에는 한계가 있고 따라서 언제나, 소유했던 것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어렵지요. 

가졌던 것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이 뒤따라요. 성적 욕망도 나이와 더불어 쇠퇴하고 마침내는 그 한계에 도달합니다. 

권력만큼 무상한 것이 없다는 사실도 누구나 인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즐거움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셨는데요.


“노년기에 접어들면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 인생입니다.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죽음은 자기 자신마저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유를 목적으로 사는 사람은 행복을 쾌락과 동일시하지만 쾌락은 그 안에 한계와 고통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돼 왔습니다. 

부가 있는 곳에는 더 많은 가난이 있기 마련이며, 애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상대를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어야 합니다. 

우리는 권력의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제나 투쟁과 전쟁도 불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소유에서 출발한 ‘나’의 즐거움을 위해 많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전제로 삼아온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소유란 

  어떤 것입니까 ?


“갑에게는 재물이 행복의 조건이 되나 을에게 있어서는 불행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물과 무관하게 행복한 인생을 유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소유하되 많은 것을 이웃과 공유하며 사회에 기여해야 합니다. 

성적 욕망이나 권력의 정당한 위상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권력을 한 개인만이 갖고 누리는 것은 독재와 통제의 사회악을 조장합니다. 

주어진 권력을 이웃과 사회를 위해 섬기며 봉사할 때 나를 통한 사회적 행복을 높이는 것입니다.”



-빗나간 소유욕은 

  해악이 된다고 

  하셨는데요.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성장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모든 악은 욕심에서 나옵니다. 저는 우리 전통 도자기를 좋아하는데 양반들이 쓰던 가치 있는 것보다 서민들이 쓰다가 버린 질그릇 같은 것을 수집합니다. 

물질적인 것들을 소유하기 위한 삶은 참다운 행복으로 가는 선택이 되지 못합니다.”



-인격적인 삶이 행복

의 열쇠라고 하셨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2300년 전에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도 그랬지요. 

행복은 인격의 산물이며 인격을 완성하고 승화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은 두 가지 근원적인 삶의 주체입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성실이며 다른 사람 즉 타인의 인격에 대해서는 사랑이지요. 

기독교에서는 신을 아버지로 하는 인류 전체가 한 형제와 같이 사는 사랑의 왕국을 선포하고 있지요. 

사랑만큼 행복한 공존 사회를 창출하고 육성해가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할까요.


“나이 든 사람이 자꾸 욕심을 부리고 일하려고 하면 건강도 놓치고 불행해져요. 

외솔 최현배 선생도 건강하게 오래 일하실 분이었는데, 한글학회에 애정이 많다 보니 일에 지쳐서 생각보다 일찍 돌아가셨죠.

나이가 들면 일은 후배에게 맡기고 지혜와 아이디어만 제공해주고 그래야 해요.”



-건강비결이 

   무엇인지요.


“운동을 한 사람하고 하지 않은 사람은 70세가 되면 표가 나요. 

저는 쉰이 넘어 정구를 시작했어요. 

수영은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40∼50년 동안 아침 식사로 빵과 우유, 사과, 채소, 계란을 먹었어요. 

커피는 하루 두 잔 아메리카노를 진하고 강하게 먹습니다.”



-윤동주 시인과 

   중학교 동창이죠.


“숭실학교가 기독교 학교여서 신사참배를 하지 않다가 중학교 3학년 끝날 때 하게 되니까 저는 학교를 자퇴해버렸어요. 

동주 형은 중국 지린성 룽징으로 돌아갔고요. 

독립운동을 하려고 움직인 사람은 아니었고 정신적으로 참여한 사람이었죠. 

동주 형은 도쿄 릿쿄대학에 있다가 학도병 모집을 피해 교토 도시샤대학으로 옮겼는데, 거기서 경찰에 잡혀갔어요. 

그때 조금만 더 지혜로웠으면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 그분이 심지가 곧고 강인한 성격이라 그렇지 못해 안타깝게 됐죠. 

하지만 그분의 희생이 우리 민족에게 더 큰 보람을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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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한 카페에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생의 스승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군지요.


“첫 번째 스승은 17세 때 만난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도산은 토요일 저녁과 주일에 교회에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인촌 김성수 선생에게서는 직장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배웠죠. 

그분은 아첨하는 사람과 동료를 비방하는 사람을 싫어했어요.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셨죠. 

저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어떻게 하면 행복

  하게 살 수 있을까요.


“행복은 선택과 노력의 대가예요. 

다시 태어나도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한 거지요.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관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이끌어가는 사람도 행복하죠. 인촌 선생은 네가 있는 직장을 행복한 곳으로 만들고,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라. 

행복은 만드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 김 명예교수는,

 

김 명예교수는 1920년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년간 후학을 길렀다. 

지금은 철학과 명예교수다. 

1960∼70년대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의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 수많은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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