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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필수 목사가 독한 류마티스 관절염 약 때문에 얼굴이 많이 부었다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원목들을 병원마다 파송해 병원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데 힘쓰고 싶다”며 은퇴 후 소망을 전했다. 



1년 365일을 매일 12시간씩 근무하며 살아온 세월이 무려 36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캔 뚜껑 하나 제대로 따지 못하는 양손을 마치 세월의 ‘훈장’처럼 안고 있다.

6.6㎡(2평) 남짓한 사무실의 한쪽 벽면에는 빈 칸 하나 없는 ‘4월 중 행사표’가 걸려 있었다.


건국대학교 병원교회 담임 고필수(69) 목사 이야기다. 


건국대병원 전신인 민중병원 시절부터 원목으로 사역하며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본관 지하4층에 있는 병원교회 사무실에서 고 목사를 만났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


어제도 퇴근길에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돌아와 입관예배를 인도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잠자다 말고 새벽에 뛰쳐나온 적도 숱하다.


“집에선 잠만 자요. 새벽 6시에 출근해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면 바로 심방목사님과 나눠 수술환자 50~60명을 대상으로 병상을 돌며 기도심방을 합니다. 8시30분쯤 아침식사를 한 뒤 대기하고 있다가 임종환자 계시면 가서 장례예배를 인도합니다. 쉬는 날이 없어요. 명절에도 환자 곁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결심이었다면 절대 못할 일이죠.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35년 넘게 해온 겁니다.”


고 목사는 30대 초반 특별한 치유의 손길을 경험했다. 빚보증을 잘못 선 남편으로 인해 살던 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니 폐병이 심해져 피를 토한 채 응급실에 실려 갔다.


“물만 마셔도 토하고 수액도 안 들어가는 상황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비도 감당이 안됐고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지요. 고쳐주시면 평생 병원선교 하겠다고요.”


중환자실에서 꼼짝할 수 없었던 그는 남편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말씀 한 구절이 있었다.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전도자의 일을 하며’란 말씀에 꽂힌 순간 그는 “아멘”을 외치고 산소호흡기를 뺐다. 그리고 큰소리로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찬송을 불렀다. 


중환자실에서 혼자 부흥회를 연 순간 전율이 흘렀고 호흡도 편안해졌다. 물도 마시고 죽도 넘어갔다.


예장중앙 총회 산하 신학교에 다니면서 병원선교를 하는 한나의료선교단에서 훈련을 받았다. 

전도사 신분으로 1981년 2월 13일 민중병원 원목으로 파송됐다.

처음 5년은 힘들었다. 


오전엔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오후엔 병실을 다니며 전도했다. 

믿지 않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항의를 많이 받았다. 

병원장의 허락을 받고 복도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관리인이 시끄럽다며 불을 끄거나 물을 끼얹곤 했다. 


힘든 시간들을 견디자 5년 만에 중환자실 옆에 책상 하나가 놓였다.



병원은 '영적 최전방'


고 목사는 2년 전에 만났던 폐암말기 환자 박 집사를 잊을 수 없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박 집사가 어느 날 고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앞으론 저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천국 갈 준비 다 됐으니 이젠 보름동안 보고 싶은 사람 실컷 보다 천국 갈래요. 그렇게 기도해주세요.” 


박 집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안함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모습은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특히 한 승려가 영접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됐다.


한 해에 평균 1000여명의 환자들이 그를 통해 영접기도를 드린다.  지난해 선교보고서에 따르면 1167명이 영접했다. 


고 목사는 “우리 삶이 병원에서 태어나 마지막 떠날 때도 병원에 있지 않나”라며 “병원은 ‘영적 최전방’이다. 


수술을 앞두고 심적으로 가장 불안한 때에, 삶의 마지막 순간에 원목들로부터 영적 돌봄을 받으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전방에서 환자를 돌보고 치유하는 일 외에도 24시간 호스피스 사역을 감당한다. 

환자 심방과 상담, 예배사역에 이르기까지 그의 하루는 쉴 새가 없다.

몸에 무리가 온 것도 당연하다. 


5년 전 수술을 받은 뒤에도 목발을 짚고 예배를 인도하느라 류마티스 관절염이 심하게 왔다.

처음엔 양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재활치료 등을 꾸준히 받아 지금은 손가락만 불편한 정도로 나아졌다.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고 목사는 은퇴도 준비해야 한다. 

누가 이 사역을 감당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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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뚜껑도 못 여는 힘없는 손가락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고 목사의 설교

노트와 신문 자료들.



고 목사는 2011년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을 세워 조직화된 병원교회를 개척하며 이 시간을 준비했다.


“병원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게 아니어서 사역을 하는 데 많이 힘들어요. 

제직들을 세우니 헌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비로소 심방목사님과 전도사님들에게 적지만 사례비도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성도나 재정은 없지만 제가 지금껏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아세요? 

나중에 천국 가면 만날 사람이 많아 행복합니다. 제가 영접시킨 분들만 줄을 서도 끝이 안보일 걸요.” 


하루의 피로를 씻듯 그는 화통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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