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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고별예배로 사역 45년을 마무리한 정영택 경주제일교회 목사. 예장통합 총회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 미래세대를 위한 소소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분별력이 영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이 땅에 발을 딛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먹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고 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경주제일교회 정영택(70) 목사가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들어 이같이 말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는 구절이다.


세상을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 그리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간하는 능력이 영성이라는 얘기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큰 어른 정영택 목사가 지난달 28일 주일예배를 끝으로 은퇴했다.
정 목사는 마지막 설교 ‘눈물의 권면’을 통해 “십자가의 원수가 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분별의 영성을 세우자는 권면이었다.


그는 45년 사역의 행복한 목회여정을 고도 경주에서 내려놓았다. 그는 ‘깐깐한 시골목사’로 불렸다.


서울 소망교회 부목사와 제주 성안교회, 서울 이문동교회 담임 목사를 거쳐 16년 전 경주제일교회로 부임했다.


정 목사는 강단에서 “복음을 가지고 싸우라”고 강조해 왔다.
‘세월호 사건’ ‘명성교회 사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복음을 기준 삼아 거침없이 얘기했다.
분별력 있는 영성의 맥락이다. “복음을 두고 보수, 진보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말이 안 된다. 말씀이야말로 진짜 보수며 이를 지킬 때 이것이 곧 진보”라고 강조해 왔다.


지난달 24일 삼일예배 날 고별 설교를 앞둔 정 목사를 경주제일교회에서 만났다.



복음은 진짜 보수, 지킬 땐 곧 진보



-116년 전통의 경주제일교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십니다. 석조예배당 등 어디 하나 눈길 가지 않는 곳이 없을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교회 마당에 한동안 서서 묵상하곤 했어요. 첨탑 십자가가 한눈에 들어오죠. 그리고 본당과 부속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은혜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유년부와 유치부실을 돌 때면 마음이 더 갑니다. ‘하나님 축복의 계시 공간입니다’ 하고 혼자 소리를 해요.”

-긴 사역 여정을 마치셨는데 여행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딸 내외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평신도 사역을 하고 있어요. 그곳에 가서 아비로서 같이 지내다 오려 합니다. 앞서 유럽 선교현장을 들러볼 예정입니다. 오는 8일부터 한 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아오셔서는 어디 사십니까.

“서울 한 구석에 전셋집을 얻었습니다. 서울살이 쉽지는 않겠지만 주님의 종이 무얼 계산해 발길을 옮기겠습니까. 쉬어도 사역 아니겠습니까.”


정 목사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늘나라’ 자세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집이 없는 것에 마음이 쓰여 조심스레 염려하니 “족하지요”라고 했다.


정 목사의 서울살이는 그간 대표를 맡았던 서울 종로5가 ‘교육목회실천협의회’를 활성화시킬 계획에서다.


예장통합 총회장과 교계방송 이사장 등 숱한 직함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어 힘을 보태는 데 소홀했던 협의회 일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협의회는 미래세대를 위한 목회 비전을 제시하는 단체다.


하지만 예산도, 인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쉬어도 사역’이란 말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종 됨은 끝이 없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은퇴 목회자가 의욕 넘치게 뭘 한다는 것도 후배 사역자들을 욕되게 하는 겁니다. 다만 그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지요.
한국교회 문제는 교회학교와 같은 성장의 모판이 없어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통합 교단만 하더라도 개교회 50%에 주일학교가 없어요. 다시 세우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해야지요.”



정 목사는 소망교회 목회 당시 한 회에 어린이·청소년 800여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세례문답 때 중·고생들에게 ‘어떻게 교회 나왔느냐’고 물으면 “어려서 교회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라고 답하더라는 것. 모판이었던 셈이다.
협의회를 통해 이 모판에 물을 대는 데 힘쓰고 싶다고 했다.

-경주제일교회에서도 다음세대 세우기에 주력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린이와 중·고등학생 400여명이 출석합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소도시여서 전도가 쉽지 않았어요. 전도훈련 등을 통해 세운 거지요. 젊은 목회자들은 미래세대 양육과 교육에 정말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교회 성장의 문제가 아니에요. 영혼 구원의 문제예요.”



미자립교회 순회하며 위로하고 파



-경주제일교회 1200여명 회중은 스크린이 없는 목사님 설교를 듣고자 성경과 찬송을 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에 애도 현수막이 오랫동안 세상을 향해 걸려 있었고요. 오늘도 교회 마당에선 이웃돕기 바자회가 열리던데요.


“원칙과 본질에 충실하며 하나님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행한 많은 일이 하나님 가르쳐 주신 대로이므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곧 이웃을 섬기는 일인 거죠.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원칙과 본질이 흔들리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서울 명성교회 사태가 그렇고요.

“법을 지켜야죠. 세습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다음입니다.
한 변호사 출신 장로님이 그러시더군요. 편법은 범죄 가운데서도 용서가 안 되는 악질 범죄라고요. 세습방지 교회법이 있는데 편법을 썼다면 과연 용서될 문제일까요. 은행 털어 좋은 일 한다고 죄가 탕감됩니까.”



정 목사는 지난 9월 초 김지철 서울 소망교회 목사 등과 ‘총회헌법 수호를 위한 예장 목회자 대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축도 순서를 맡았다. 명성교회 세습 철회를 위한 대회였다.

정 목사는 600여명의 참석자 가운데 유일한 예장통합 전 총회장이었다.

그는 2014년 총회장 시절 교회 분쟁 등 사회에 덕이 되지 못하는 대형교회를 향해 “목사가 떠나면 바로 해결되는 일”이라고 쓴소리를 했었다. 물론 그들은 못 들은 척했다.

-당장 무얼 소망하십니까.

“농어촌·미자립 교회의 요청이 있다면 교역자와 교인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들과 말씀을 나누고 약소한 도서비라도 건넬 수 있으면 좋고요. 또 해외 선교사님들을 찾아 밤새워 선교지의 고단함을 듣고 싶습니다.”


<미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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