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자살 사태' 신의진 교수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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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란 거친 느낌이다. 나긋나긋하고 우아한 아줌마를 보고 대한민국 아줌마라곤 하지 않는다.
그 이미지란 야성(野性) 같은 것이어서 자녀를 두고 ‘우리아이’라고 하려다가도 ‘내 새끼’가 먼저 튀어 나오는,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신의진(47) 연세대 의대 교수가 그랬다.
누군가는 “탤런트 한은정 닮았다”라고 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부산 사투리 억양이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상인처럼 거셌다.
본래 기질이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신 교수는 엄마가 되고 드세졌다.
틱 장애가 있던 첫째를 기르면서 사회의 온갖 모순과 불합리에 온몸으로 저항해야 했기 때문일까. 그녀에 따르면 엄마는 ‘전투사’다.
이 세상 두려울 게 없는 투사. “큰 아들 경모가 저를 바꾼 게 맞아요. 그래서 제가 사회운동도 하게 된 거예요.” 아들 덕에 용기가 생겼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성폭력 피해 아동을 돕는 일에 나서고 ‘나영이 주치의’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 올해 나이 열아홉.
그들도 열아홉이었다. 목숨을 끊은 카이스트생 네 명 중 세 명이 또래였다.
신의진 교수라면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들이 극단의 선택을 했는지.
그녀가 쉬는 금요일에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질문 요지를 듣자마자 자신이 출근하는 월요일의 첫 스케줄을 비워줬다.

 

출구없는 세상

“어떤 한 지역에 백혈병이 많이 발생한다고 칩시다.
한 두 명은 일반적으로 생길 수 있죠. 하지만 어느 시기에 유독 많이 생겼다. 개인의 질병에 대한 취약성일까요.
카이스트의 환경 자체에 인바이런먼털 톡식(환경적 독소)이 있었을 겁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녀는 인간을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 역시 과학자이기에 잘 아는 ‘그 동네’의 해묵은 문제라고도 덧붙이면서.
“개인의 특성이라든지, 얼마나 가치로운 사람인지 우린 그런 거 없는 거 아시죠.
자본주의 체제 아래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거 어쩔 수 없다 해도 적당히 해야죠. 카이스트 학생들 나이도 어리고 한창 꽃피어야 될 아이들이에요.
어찌 보면 갓 사춘기 지난 아이들이란 말입니다. 기능공으로만 대해 봐요. 게다가 얘들은 ‘노 웨이 아웃(No way out)’이에요.”

비단 카이스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뜬금없는 얘기인데 2000년도에 어떤 병이 생겼냐. 아기들에게 한글, 영어 가르치면서 바보를 만들어 오기 시작하더군요. 애들을 들들 볶아서 암기귀신을 만들어 왔어요.
공부만 시키고 정서적 케어를 안 해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고난에 무너져요. 충동적인 행동을 하죠.”
그녀는 쭉 지켜봤다. 자폐, 우울,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으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은 늘어만 갔다.
병이 아니더라도 기질상 극도로 예민하거나 충동적인 아이들도 전체의 25∼3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결국 같은 문제예요. 소아정신과는 인간의 발달, 근간에 관한 학문이거든요. 뇌, 감정, 이성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기가 막히다는 걸 알게 되죠.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면 어떻게 되느냐. 셀프 이미지(자아상)에 엄청난 흠집이 나요. 성취 외에 즐거움이란 것도 있는 데, 즐거움이 없는 사람은 오래 못 버텨요. 어떤 일도 못 해내요.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그녀는 ‘출구 없는 세상’을 우려했다. 끝은 극단이다. “보셨잖아요. 우리 사회는 패자부활전도 없거든요.”

 

그녀의 선택
그녀도 별 수 없었다.

“저도 그 부분엔 할 말이 없는데, 왜 너는 미국을 선택했느냐 묻는다면. 기능인 교육을 덜 시켜서.(웃음)”
경모와 정모(16) 모두 미국 학교에 보냈다.
둘 다 중 3때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경모는 틱 장애도 극복했고 생물학 분야에 명성이 있는 대학에 들어가 의학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정모는 미식 축구부 주장이 돼 프로선수가 될 꿈을 꾸고 있다.
현실적인 대안이란 결국 자녀를 유학 보내는 건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정답도 아닐 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청소년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면서 “청소년의 스트레스가 어른의 2배”라고 전했다.
심지어 자기주도 학습전형까지 생기는 바람에 아이들은 패닉 수준이라고 말했다.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자기관리까지도 점수를 매기는 교육. ‘알파맘’(정보력으로 무장한 엄마)이 되지 않으면 자녀교육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다. 자녀에게 전적으로 매달릴 수 없는 워킹맘은 고민에 빠진다.

 

반란의 기로
그래서 신 교수가 하는 말이다.

“30대인 여러분이 저항해야 해요. 우리가 체제 순응적인 경향이 있거든요. 여성, 교육, 육아에 대해 제대로 물어야 합니다.”
“왜 정부가 부모한테 돈을 주겠어요. 그렇죠. 선거. 우리가 거부해야 돼요. 이 나쁜 놈들아 하고.”
하도 답답해서 사이트를 만들고 감시단을 발족해 조목조목 따져볼 생각도 하는 중이랬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공무원 조직인 거 아시죠. 저는 저항도 많이 하거든요.
아동 성폭력 때문에 많이 싸워봤잖아요. 안 되더라고요. 기존 시스템으로 갔으면 ‘조두순 사건’의 피해 어린이는 계속 배변백 차고 있어야 돼요.
제가 왜 그렇게 저항하고 모금운동까지 했겠어요. 정부는 늘 ‘잘하고 있다’예요. 잘하면 성폭력은 왜 늘어요.
저도 시간 많아 공적인 데 관심 갖는 거 아니거든요. 누구라도 잡고 얘기 안 하면 배가 산으로 가니까.”
그녀는 적어도 바른 말이라도 하고 살자고 결심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 나오려는 데 신 교수가 액자 하나를 꺼내어 보여줬다. ‘권도문.’
“미국 휴스턴에서 연수받을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 받아 온 거예요. 너무 좋지 않아요? 정말 항상 보는 글이에요.”
‘이제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에 들어가십시오. 선한 일에 용기를 가지시며/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항상 연약한 자를 도우시며/병든 자를 찾아보시며 곤란 당하는 이웃을 위로하십시오/모든 사람을 존경하시며/주님께 봉사하고 주님을 사랑하십시오/모든 일에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시며/어떤 일에도 소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그리고 거룩한 성령께 순종하며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해 나가십시오/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을 항상 도와주실 것입니다.’

 

■ 신의진 교수는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부교수 겸 강남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의사다.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혜화여고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서울 해바라기아동센터(성폭력 피해아동 치료상담센터) 설립을 주도해 운영위원장을 5년간 맡았다.
2008년 12월 ‘조두순 사건’ 피해 아동 주치의로도 활동했다.
10여년간 성폭력 피해아동과 가족을 상담·치료한 공로로 2009년엔 대통령 표창을, 지난해엔 서울시 여성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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