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배우생활 김인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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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열린 영화 ‘독짓는 늙은이’제작발효회에서 후배의 부축을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배우는 무대에서 죽어야 한다.”
40년 넘게 배우로 살아온 나의 신념이다. 갑자기 이런 말을 왜 할까.
나는 지금 투병 중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길 역시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그분이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사명의 길임을….
1년 전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화창했다. 배우로서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 그러나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영화 ‘독 짓는 늙은이’의 제작발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현장은 기적의 자리였다.
화사한 분홍색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주변의 도움을 받아 주연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마침 오랜 시간 부부로 호흡을 맞춰온 탤런트 전원주씨는 내가 이렇게 무대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며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몇 차례. 2005년엔 아예 병원에서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모든 걸 버려야 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섰다.
말은 어눌했지만, 그럼에도 영화와 CF에 출연했고,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이게 배우다.
 힘든 것을 감수하는 게 배우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함으로써 꿈을 심어주는 게 배우다. 어떠한 시련이나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투혼을 불사르는 게 배우다. 그렇게 오뚝이처럼 일어선 나 김인문은 세상에 희망을 주는 배우이고 싶다.
당시 영화는 30% 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신예 소재익 감독은 누구보다 이 영화를 감각적으로 만들었다.
1940∼70년대 한국의 모습과 장인의 삶을 통해 본 동양의 신비, 한국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소 감독은 잘 담아냈다.
후배 연기파 배우 안병경씨는 극중에서 ‘웽손이’를 맡아 리얼하게 초반 영화작업을 마무리했다.
그에게 특히 감사한 게 있다. 한때 어려움을 겪고 방송을 잠시 떠나 있다가, 이 영화에 합류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거다.
그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에 참석했고, 지금은 경기도 성남시 선한목자교회에서 열심히 믿음을 키워가고 있다.
나는 신인의 마음으로 여름쯤 시작되는 나의 촬영분을 기다렸다.
불편해진 나의 한쪽 팔 때문에 극중 내 역할 ‘송 노인’은 한 손으로 독을 빚는 장인으로 묘사되었다.
감독과 상의해서 내가 독 짓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장소도 물색해 놓았고, 배우들과의 리딩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변을 보는데 피가 비쳤다. 검붉은 피의 양은 갈수록 늘어갔다. 검사 결과 방광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늘이 노랬다.
이미 뇌경색으로 몇 차례 수술을 받았기에 더 이상의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내는 그저 울기만 했다.
소속사 대표인 손녀에게 전화했다. “할아버지, 마음을 담대하게 가지셔야 해요. 당황하지 말고 먼저 기도하세요.” 마침 중국 출장 중이던 손녀는 이내 귀국해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었다. 그럼에도 하찮은 인간인지라, 참으로 불안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나의 믿음의 분량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싶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됐다.

 

◇김인문 집사=1939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 68년 영화 ‘맨발의 영광’으로 데뷔.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몽실언니’ ‘첫사랑’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 여의도순복음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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