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우 박사 아내 석은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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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블레싱(blessing)”이라는 석은옥씨.

 

그녀가 결혼한 1972년. 그 시절만 해도 여성의 롤 모델은 순종적인 ‘현모양처’였다.
내 남편, 내 자식만 바라보고 한 세월 산 어머니에게 들었을 법한 얘기. “요즘 같으면 이혼했지.” 석은옥(69)씨도 동시대 여성이다.
석은옥씨는 한인 최초로 미 백악관에 입성한 시각장애인 강영우(67) 박사의 아내이자 장남은 미 유명 안과의사로 차남은 오바마 대통령의 입법관계 특별보좌관으로 키운 어머니로 알려진 인물이다.
앞이 안 보이는 남편의 눈 노릇뿐이랴 짐꾼, 목수, 운전기사 온갖 궂은 일 마다않고 남편을 위해서라면 나 하나쯤 버려도 좋다며 헌신했던 여인.
두 아들을 키우면서는 자신이 배운 모든 것(교육학 전공)을 쏟아 부었고,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온리(only) 자식’이었던 맹모. 가족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요, 삶의 전부였던 그녀가 지금 와서 하는 말이다.
“우리 남편이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이혼했어요.” 1일 서울 을지로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만난 석씨는 거침없었다. 그녀는 갱년기 경험담부터 꺼냈다.
“무남독녀 외딸이라 그냥 우리 남편 잘되는 거, 아이들 쑥쑥 자라는 거 보고 즐거웠거든요.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잘 이끌어나갔으니, 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념이 있었죠.
잘 견뎠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냐. 인생 55세에 갱년기가 오면서 호르몬에 변화가 온 거예요.”
2002년 두 아들마저 장가보내고 나니 허탈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성공해서 유명해졌지 아들 둘은 떠났지.
왜 황혼이혼이 많다 잖아요. 나에게도 그러한 저기가 오는 거야. 참 허무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화가 나고 쓸쓸했지.”
지나고 보니 하루 24시간을 가정에만 매여 살았다. 동문회에도 안 나갔고 친구도 없었고, 전화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지나온 삶.
시각장애인 남편 뒷바라지에 두 아들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기에 포기한 생활.
사실은 그게 행복해서 불평 한 번 안했는데 갱년기 우울증에 그만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어떻게 그러고 살았나 몰라.”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다. 남편으로서는 자신의 지팡이라는 아내가 어느 날부터 밖으로 도니 못 마땅했을 테고, 아내는 지팡이에게도 자유시간을 달라며 항변했을 것이다.
석씨가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 이사장을 맡아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때 “숙명이 먼저냐, 남편이 먼저냐!”라며 남편 강씨가 버럭 화를 냈던 일도 있었다.
어찌됐건 석씨는 두 아들 장가보내고 2004년 28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뒤부터 자신만의 활동에 들어갔다.
2006년 한인여성들의 봉사 모임인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을 결성해 달마다 양로원을 방문했고 미혼모와 장애인 등 소외 계층 지원에도 나섰다.
회원수는 100여명. 요즘은 시각장애인 신학 유학생을 위해 신학서적을 회원들이 100장씩 맡아 읽고, 녹음하는 중인 데 참여율이 높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면 ‘허그’하자며 두 팔을 벌리고, 아들 또래 여성을 만나면 수양딸 삼아 버리는 석씨의 ‘통 큰 사랑’에 회원수는 나날이 늘어 이젠 북가주 지회까지 생겨난 판이다.
모임 덕에 크로마하프와 몸찬양(기독교 율동)도 배웠다는 석씨. “지금은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가르쳐주러 다녀요. 아주 그것 때문에 내가 하하.”
매일 아내의 웃음소리를 들어서일까, 남편이 변했다. 하루 온 종일 붙어 있어야 직성이 풀리던 남편이 아내에게 시간을 주기 시작한 것.
마침 음성을 인식하는 보이스 노트북 등 첨단 기기도 그녀의 일을 덜어줬다.
대신 아내는 남편을 위해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해 놓고 전자레인지에 점자 포스트잇으로 ‘두 번 누르세요’라는 표시를 남기는 것까지 꼼꼼히 챙기고야 외출했다.
‘지팡이의 자유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이틀 먼저 한국에 가 있으라는 ‘선물(?)’까지 받았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거예요. 여보 나 이틀만 원정가서 친구 만나게 해줄래. 그럼 ‘노(No)’할 사람이 비행기표를 먼저 끊어주니 요새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막 나오는 거야.”
석씨는 자신의 삶을 담은 두 번째 수필을 준비하고 있다. 연내 출간을 목표로 집필 중인데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전 권(‘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생명의 말씀사)’)에서 다뤘다면 이번에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담고 싶다는 그녀다.
“올해는 제게 굉장히 의미가 큰 해에요. 맹인 소년을 만난 지 50년, 아내가 된 지 40년, 그러면서 여성으로서 인생 70년을 맞는 해거든요.
70년을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크리스천 여성인 나의 삶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석은옥씨는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들려줬다. “돌 석(石), 은 은(銀), 옥 옥(玉) 이거든요. 제 이름이 원래 석경숙인데, 남편이 프로포즈 하면서 돌로 10년, 돌 보다 나은 은으로 10년, 은보다 귀한 옥으로 10년을 살라고 만들어준 이름이에요.”
옥의 시대는 92년에 이미 끝이 났다는 석씨. “사람들이 다음 시대는 그럼 다이아몬드 시대냐고 물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제 이름은 석은옥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 가운데 이뤄졌으니 주님의 시대로 삽니다.”
석씨는 그간 받은 축복과 은혜를 베풀며 살고 싶어 했다. 제2, 제3의 석은옥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매년 시각장애인 15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그녀.
한 가지 소원을 말했다.
“시력이 없는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들은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내조를 해야 되는 게 있잖아요.
그걸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심청이를 위해 용궁에서 잔치를 열어줬잖아요. 적어도 20년, 30년 이상 맹인과 산 아내들을 위해 우리 영부인께서 그런 잔치를 해주면 참 좋겠는데…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거든요.”

 

■ 연보
-1942년 서울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남
-1961년 숙명여대 영문과 입학
-1961년 5월 대한적십자사 청년봉사회 가입, 고아 강영우 소년에게 학비 전달
-1968년 강영우 연세대 교육학과 입학
-1967∼68년 펜실베이니아 주정부 재활청 연수교육, 시각장애 분야 특수 교사 자격증 취득
-1972년 숙명여대 교육과 졸업, 강씨와 결혼
-1976년 남편 강씨,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교육학 박사(미 피츠버그 대학원)
-1985년 미국 인디애나주 퍼듀대 교육학 석사
-1977∼2004년 인디애나주 개리시 교육청 시각장애 순회교사 28년간 봉직 후 은퇴
-2001∼2008년 강씨, 43대 부시 대통령 장애인 정책 자문위원(차관보급)
2009년 차남 강진영 변호사, 오바마 대통령 입법 특별 보좌관 발탁(장남 강진석씨는 워싱턴 조지타운 의대 안과 임상교수)
2006년∼현재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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