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빛 맹인 선교회 안요한 목사맹인선교.png

하나님 없이 살고픈 청년이 있었다.
‘하나님 없이도 잘산다는 것을 보여 주리라’고 생각한 청년은 세상에서의 삶을 즐겼다.
결혼해 두 딸의 아버지가 됐고 주한 미8군에 근무하던 중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미국행을 준비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원인 모를 안질로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더니 나이 37세에 시각장애인이 됐다.
죽음을 생각했다. 몇 번의 자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5∼9)
난생 처음 느끼는 안식이었다.
이후 그는 서울역 거리를 전전하는 우여곡절 끝에 성직자가 됐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야간학교를 설립했다.
교육을 받은 800여명의 아이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각자의 삶을 개척했다. 그가 설립한 새빛맹인선교회에는 수많은 시각장애인이 찾아왔다.
새빛맹인선교회 설립자 안요한(71) 목사가 최근 자신의 인생과 신앙 스토리를 정리한 회고록 ‘낮은 데로 임하소서, 그 이후’(홍성사)를 출간했다.
30년 전 118쇄를 기록했던 이청준의 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속편인 셈이다.
안 목사의 희망과 도전 이야기는 1982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유명 인사가 됐다.
앞을 볼 수 있던 37년보다 영의 눈으로만 생활하는 지금이 오히려 기쁘고 감사하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안 목사는 오늘도 소외된 시각장애인들의 재활 치료와 복음 전도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30여년 동안 인도한 집회 횟수는 무려 55개국 7500여회.
1년 중 절반 가까이 해외에서 간증 집회를 갖고 있다.
 그가 설립한 서울 방배동 새빛맹인선교회 회관과 경기도 용인 새빛요한의집에는 70여명의 시각장애인이 함께 생활한다.
얼마 전 어느 안과의사가 수술을 하면 볼 수 있다며 수술을 권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실명의 선물로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었다고 안 목사는 간증했다.
그는 오는 25일 인도네시아 메단 지역에 맹인교회를 설립한다.
 이 지역의 시각장애인 재활과 복음화를 위함이다. 요즘 동남아와 아프리카, 중동 지역을 집중적으로 순회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의 제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버림받았기에 버림받은 자들의 아픔을 알 수 있었고, 시력을 잃었기에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종이 눈 감은 덕에 알게 된 창조주 하나님을 세상 끝까지 전하려고 합니다.
복음 전파가 제 여생 마지막 사명입니다.”(saebit.or.kr·02-533-9863)

 

인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