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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지난달 종영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노인 혜자’가 전한 마지막 내레이션 중 일부다.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란 걸 전해주며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노인 혜자’를 연기한 배우 김혜자 권사님을 지금까지 네 번 정도 만났다. 


2000년대 중반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파키스탄에서 의료팀과 함께 긴급구호활동을 펼치고 막 귀국한 권사님을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본부에서 인터뷰했다. 


당시 권사님은 파키스탄 산악지대에서 침낭 하나에 의지한 채 텐트에서 며칠 밤 새우잠을 자다 보니 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고 했다. 


그런 몸을 이끌고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부모를 잃고 ‘알라’만 중얼거리던 남자아이, 상처 난 부위를 치료하는데 아파서 ‘아빠아빠’(현지어로 ‘아바’)를 찾는 아이들을 살려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던 권사님을 잊을 수 없다.


이후로도 몇 차례 매년 아프리카에서 빈곤 아동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이 권사님으로 하여금 오지로 떠나게 하는 걸까. 

“내가 연기자로 빛나고 싶듯 우리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으로 빛나야 합니다. 

아이들을 찾아가는 그 일은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할 것입니다. 

저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며 삽니다. 


임종 순간에 얼마나 소유했고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느냐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그는 명품 배우이기 이전에 ‘지구촌 굶주리는 아이들의 엄마’로 30년 가까이 행복하게 살아온 아름다운 스타였다.


살면서 우리가 교본으로 삼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한다. 


감사할 줄 알고, 베풀 줄 알며, 주변을 사랑하는 모습 말이다. 적어도 팬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라면 더 그렇다. 


스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생 철학까지도 대중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

‘버닝썬 게이트’ 등으로 연루된 젊은 스타들의 추악한 민낯을 보면서 심각하게 든 생각이다.

K팝 중심에 섰던 그들은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밑바닥으로 추락한 것일까. 


‘스타=성공’이란 공식에만 집착해 온 결과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IT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공지능 안에는 숲이 없는 것처럼, 잘 생기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돈 많이 벌면 뭣하나. 


가정이나 학교라는 숲에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기본 인성조차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마음이 아닌 머리로 생각해 만든 사회성을 가졌으니 비뚤어진 가치관 속에서 돈, 권력, 성에만 집착하는 ‘괴물’로 변해간 것이다. 


혹여 이들을 보면서 가수나 연예인의 꿈을 키웠을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영향을 받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일본의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와 정신과 의사 나코시 야스후미는 공동의 저서 ‘타인을 안다는 착각’에서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돈이나 물건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돈이나 물건을 많이 갖고 있더라도 그에 얽매이지 않는 것’, 억지로 명예를 멀리할 필요도 없고 명예를 얻어도 좋지만 그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버닝썬 게이트’만 봐도 이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인 성공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인생은 파멸뿐이다.


‘기쁨의 신학자’로 불리는 존 파이퍼 목사님은 ‘돈, 섹스 그리고 권력’이란 책에서 이들 세 가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선물이라고 언급했다. 


동시에 우리의 기쁨과 부와 영혼을 한꺼번에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세 가지라고도 지적했다. 


무슨 차이일까.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분 중심의 기쁨의 도구로 활용한다면 돈, 성, 권력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고, 우리를 자유롭게도 하며, 우리로 하여금 섬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에 집착해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 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노인 혜자’의 조언대로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별 것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는 불행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국민일보 노희경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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