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세영 원로장로의 생 전 모습.
제법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날 무렵인 지난 8일, 원로장로 한 분이 향년 85세를 일기로 이생의 삶을 마쳤습니다.
시골 교회를 개척하고, 아들 목회를 뒷바라지하며,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는 자신의 유산 가운데 1억원을 교회에 헌금한데 이어 나머지를 선교를 위해 쾌척했습니다.
주인공은 분당제일교회(박기철 목사) 박세영 원로장로입니다.
박 장로는 이 교회 담임인 박 목사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교인들을 잘 섬겨주세요, 교인들을 잘 섬겨주세요….”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맡았던 강인구(분당제일교회) 장로가 전한 박 원로장로의 유언입니다.
당시 장례식에 참석했던 조문객들은 박 장로의 이 마지막 한마디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부모 슬하에서 신앙을 쌓아온 박 장로는 일찍이 경북 청송의 월정교회를 세우는 데 앞장섰습니다.
1971년 장로로 임직한 뒤에는 장로회신학대(장신대) 기독교교육과에 진학한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70년대 중반에는 아들 박 목사의 판자촌 빈민선교를 돕는가 하면 서울 광장동 장신대 앞에 ‘광나루 글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신학도서를 취급하는 서점을 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들이 건강한 목회를 이어가도록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줬습니다.
▲ 어린이주일이었던 지난해 5월 1일 분당제일교회 유아세례식에서
외증손자 세례식에 참여한 박 장로 가족들. 외손녀 부부와 고 박 장로,
외증손자, 박기철 목사(왼쪽부터) 등 4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분당제일교회 제공]
박 목사의 동료 목회자인 임규일(광주 만성교회) 목사는 16일 “박 장로님은 아버지보다는 목회를 돕는 신실한 동반자로서 아들인 박 목사에게나 교인들에게 섬김의 본보기가 되어 주셨다”고 회고했습니다.
6대 신앙 가문의 한가운데 있던 박 장로는 가정에서도 신앙의 가문을 잇는 매개가 되어 왔습니다.
지난해 5월 분당제일교회에서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박 장로의 외증손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자리였습니다.
집례자는 박 장로 아들인 박 목사였고, 세례반(세례수를 담은 그릇)은 박 장로가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손녀 부부는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4대가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박 장로의 신앙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지난 8월 박 장로는 간암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가족을 향해 박 장로는 치료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답니다.
“내 간절한 바람은 고요하게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니, 부디 나를 그렇게 인도해다오.” ‘진정한 크리스천이 있느냐’는 비아냥이 넘치는 시대 속에서, 삶으로 증명하는 참신앙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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