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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장로교회 신원규 목사가 ‘거꾸로 오르는 사다리’란 고백적인 목회 회고록을 출간했다. 
‘성공에서 무너짐으로 그리고 생명으로’란 부제가 붙어있다.

책을 들고 지난주 한 식당에서 LA 지역 기자들과 만난 신 목사는 머리가 전보다 많이 희어 있었다. 
예전에는 염색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염색을 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엔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는데 지금은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뒤로 넘긴다고 했다. 

철저하게 부서진 후 이제 다시 살고 있다고 말하는 신 목사의 얼굴에는 평화와 너그러움이 넘치는 분위기였다.

신원규 목사는 1990년대 LA지역에서 아주 잘나가는 목사였다. 

그가 개척한 삼성장로교회는 1500여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대형교회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빚으로 교회당을 넓히다 결국은 예배당을 모두 은행에 넘겨주고 거의 교회 문을 닫다 시피 철저하게 실패를 경험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유명했던 목사가 실패한 목사란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만큼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목회는 모두 자신의 인간적인 영광을 위한 것이었지 하나님을 위한 목회가 아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제는 큰 예배당, 대형교회에 대한 모든 꿈을 접었다. 

이제는 작은 교회로 만족하면서 나의 영광이나 나의 야망이 아닌 참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시작하겠다고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실패가 누군가에게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간한 책이 바로 ‘거꾸로 오르는 사다리’라고 말했다.


부흥하는 대형교회  삼성장로교회

삼성장로교회는 1984년 9월 LA 동부 라하브라에서 창립되었다. 

1982년 유학으로 미국에 온 신 목사는 오하이오 애슐랜드 대학을 거쳐 켈리포니아 침례신학대학을 나와 미국 성경장로교 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부분의 이민교회 목회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교회 개척을 하면서 갖은 고생을 했다. 

한국서 대학교수로 일하던 매제, 그리고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오렌지카운티 밤거리를 누비는 ‘3인조 야간청소부’로 일해야 했다. 

사모는 낮이면 봉제공장, 저녁에는 밤 청소부로 일하며 생활을 꾸려갔다. 

건물 밤 청소를 하다보면 하루 저녁에 재떨이 200여개를 털면서 새벽 2시까지 ‘노동 치며’ 목회를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고생고생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다 보니 아내가 병들어 가고 있었다. 

폐결핵에 자궁외 임신, 가슴종양, 쓸개절제 수술까지 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1992년쯤에 이르자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라하브라 하이츠에 있는 예배당으로 이전해 오면서 다니엘 특별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남가주 이민교회에서는 최초로 특별새벽기도회가 열린 것이다. 

성령님께 감동받은 1500여 성도들은 새벽기도를 마친 후 하얀 티셔츠를 입고 노방전도에 나서곤 했다. 

다니엘 새벽기도회 소문이 하도 파다하게 퍼져 멀리 샌디에고에서까지 참가하는 성도들도 있었다. 
당시 1990년대 중반 한인교회 가운데 성도수가 1000명 이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LA 대형교회들도 500명에서 800여명 수준이었다. 

개척한지 10년만에 삼성장로교회는 초대형교회로 성장했다.
 

부동산 부자로 소문난 교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인교계에 예배당을 크게 짓는 붐이 일었다. 

명목은 다음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교회마다 무리하게 교회를 건축하거나 증축하면서 성도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삼성장로교회도 교회 건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라하브라 지역에 있는 병원 건물을 교회당으로 매입했다. 

그런데 650만 달러를 주고 산 건물이 10개월 만에 천만 달러로 치솟았다. 

은행들이 앞 다투어 신 목사를 찾아와 대출경쟁을 벌였다. 

한번 부동산으로 재미를 보고 나니까 목이 좋은 땅이나 건물을 보면 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게 함정이었다. 전체 부지가 7만 2000평 규모의 미국 교회를 또 사들였다.
 
삼성교회가 부자가 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게 되었다. 

그러나 속으로 들여다보면 그건 신기루에 불과했다. 

모두 은행빚으로 사들인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교회는 갈수록 가난해지면서 은행돈만 불려준 셈이었다.

“결국 돈 한푼 없이 엄청난 규모의 빌딩과 땅을 사들인 교회는 재정의 한계를 맞고 말았다. 
부동산이 많다는 이유로 은행은 말만하면 돈을 빌려 주었다. 보통 교회나 한인들은 은행에서 10만 달러 빌리기도 어렵다는데 나한테는 말만하면 100만 달러도 곧바로 빌려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교회는 은행의 VIP였다. 
우리교회가 매달 은행에 주는 이자만해도 15만 달러 가까이 되었다.”


금융위기 터지면서 붕괴시작

그러나 그것은 붕괴의 시작에 불과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지자 부동산 값이 하늘처럼 치솟을 때 빌렸던 수백만 달러의 돈을 단번에 갚아야 하는 상황에 내 몰렸다. 

결국 병원 건물을 개발업자에 넘기고 350여명 들어가는 브레아의 카본 캐년으로 이사했다. 
몽골선교를 위해 몽골 미션스쿨 건립에 큰 돈의 착수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몽골의 집권당이 바뀌면서 모든 교육 프로젝트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엎친데 덥친 격이었다. 

결국 마지막 남았던 교회 건물마저 은행에 넘겨줘야 했다.

성도들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신 목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나는 한 영혼이라도 더 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싹트기 시작한 대형교회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나의 탐욕은 결국 그토록 아름답던 교회를 혹독한 시련 속으로 몰아 넣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후 카본 개년에 있던 예배당마저 산불에 피해를 입으면서 신 목사는 더 참혹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은 산불 사건을 통해 내게 교회란 무엇인가를 묻고 계셨다”고 말하는 그는 “성도들의 심신을 고단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 교회건축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다. 
목회자인 내가 섬겨야 할 이는 ‘교회’인 성도이지 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정작 섬겨야 할 성도를 희생시키고 보기에 좋은 건물을 짓는데 온몸과 마음을 불사르고 있었다”고 되돌아 봤다.


다시 작은 교회로
 
무리한 교회당 건축과 은행 빚으로 혼란했던 절망과 시련의 때를 거쳐 삼성교회는 다시 작은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출석교인 1500여명에 이르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 초라한 모습이지만 목사가 한없이 낮아지고 해체되어 가는 동안 성도들은 영적으로 더욱 강건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도들의 입에선 “교회는 아주 작아졌지만 교회생활은 훨씬 즐겁고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무너짐의 과정에서 신 목사는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루는 팜 스프링스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마운트 샌하신토 꼭대기에 올라 바위를 바라보며 인생을 깨끗이 정리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좌절의 끝에도 하나님은 계셨다.

“너의 생명이 너희 것이냐? 내가 피 값으로 산 것이 아니냐? 
그런데 왜 너는 네 마음대로 나의 것을 버리려 하느냐? 
아직 너는 살아 있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있다.
이제 내가 네 안에 그것을 알게 하고 새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을 추스려 다시 일을 시작한 신 목사는 무너짐은 회복을 위한 주님의 계획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가족과의 관계를 새롭게 깨달으면서 새 힘을 얻게 된 신 목사는 철저하게 마음을 비우면서 치유의 과정을 밟게 되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요, 무너짐이요, 잃음이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성공이요, 회복이요 자유인 것을 깨달았다.

겸손하게 다시 목자의 자리에 선 신 목사는 지난 수년 동안을 특별한 안식년으로 생각하고 있다.
 작은 교회로 돌아오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게 다시 시작하고 있는 신원규 목사 . . . .
150여명이 모이는 삼성장로교회를 더 큰 교회로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 이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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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원규의 목사의 고백적인 목회 회고록 '거꾸로 
                                             오르는 사다리'의 표지 


한 영혼을 사랑하며 행복한 목회를 하고 싶은 것이 이제 그의 꿈이다.

주님이 허무신 것은 내 삶의 바벨탑이었다고 고백하는 그는 “나의 낮아짐은 나를 살리기 위한 주님의 은혜다. 

낮아지고 비워져야 내 안에 주님의 것이 담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캄보디아 등지의 고아들을 돌보는 ‘마이키즈월드’ 사역에 정성을 쏟으며 작은 교회 목사로서 즐겁고 행복하게 목회하고 싶다는 그는 3월중 예배당을 브레아에 있는 브레아 연합감리교회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교회이름도 바꿀 예정이다.

오랫동안 신 목사와 함께 삼성장로교회를 지키고 있는 박우성 장로(LA엘리트 치과병원 원장)는 이 책 추천사에서 “거꾸로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올바르게 올라갔던 사람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작업이다. 

저자의 끊임없고 한결같은 외길 인생은 요즈음 쉬운 길로만 가려는, 그래서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우리 모두에게 반성과 도전, 그리고 용기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고 쓰고 있다.
<크리스찬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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